우리는 성인이고 사리분별이 가능하다. 그래서 부당한 일을 당한다거나 의구심이 들만한 일을 겪으면,
부당함을 호소하고,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이유를 물어보기도 한다. 돌아오는 대답 여하에 따라 재차 설명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나의 직장 생활 동안 꽤나 있었다. 공무원이란 신분 때문에 침묵해야 하는 했었던 일들. 더 나아가 상대방의 일방적 주장에 최소한의 반박도 하지 못하고 사과를 했었어야 했던 일들. 구급대원들은 특히나 소방 내에서도 시민들을 만나야 할 일들이 많다. 시민들 중에서도 매우 예민해져 있는 상태의 분들을 말이다. 설득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고, 충분했다고 생각한 설명들이 과도한 변명으로 변질되어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 때도 있다. 급박한 상황 속에 사람이 죽었다거나, 괴로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조금만 참으세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런 상황들이 주는 뼈아픈 기억과는 또 다른 종류의 기억들이 나의 가슴속 여기저기에 그것도 훤히 보이는 곳에 상당히 남아있다.
그런 사람들이 혀라는 날카로운 도구로 가슴을 긁어대면 맥없이 가슴을 내주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날카로운 무기를 막아내기 위해 나의 무뎌진 언어를 꺼내면 어김없이 민원이란 막을 수 없는 수류탄을 던진다.
정당한 민원은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때론 그것을 자신들에게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그들의 첫 번째 무기를 막아내면 2차로 던지는 수류탄이 동료들까지 휘말리게 할 수도 있음을 알기에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강철로 된 혓바닥을 가슴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밤늦은 시간 배가 아프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을 했고, 현장의 위치는 노래방으로 3층 높이에 있는 오래된 건물 위에 있었다. 노래방은 2층에 위치했지만 높이는 3층에 가까웠다. 계단은 지상에서 현장 위치까지 바로 직선으로 가파르게 이어져있었고, 사람 두 명이 가로로 서서 가기에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장비를 들고 일렬로 늘어서서 올라간 노래방에는 젊고 몸이 큰 남자가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끙끙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선생님 간단한 검사 좀 할 거예요 잠깐만 누워 계세요."
그때였다. 환자의 친구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술에 취한 채 다가와 소리쳤다.
"늬들이 뭘 안다고 검사를 해. 그냥 병원에 데리고 가."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상태 파악을 해야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알고 병원 선정도 됩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XX 하네. 한 대 맞아야 시키는 대로 할래?"
"욕하지 마세요. 저희는 도와주러 온 사람이지, 욕먹으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협조 부탁드릴게요"
"야.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선생님, 자꾸 그러실수록 시간이 더 지체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병원 데려가라고!!"
더 이상 말을 했다가는 정말 폭력이라도 가할 기세였다. 길길이 날뛰는 보호자를 앞에 두고는 우리의 절차를 정상적으로 이행할 수가 없었다. 우린 환자를 검사 없이 구급차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가변형 들것(주 들것이 갈 수 없는 곳에 들고 가는 가볍고 어느 정도 유연성이 있는 튼튼한 재질의 들것)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말했다.
"환자분 계단으로 내려갈 건데 잠깐만 똑바로 누워주시겠어요? 엎드린 채로 내려가면 너무 위험해서요."
"야이 XXX들아 장난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가는 게 너네 일이잖아. 얘가 엎드려 있든 누워있든 알아서 데리고 가야 되는 아냐?"
"그러니까 말씀드리잖아요. 보시다시피 계단이 많이 가파르고 어떻게 내려가든 위험한 상황이고 지금 환자분이 술도 드신 상태기 때문에 통제가 되지않는 상황에서 엎드린 상태로 몸부림이라도 치면 떨어집니다.
"..... 야 너 아까부터 엄청 토다네 너는 좀 맞아야 되겠다."
보호자는 점점 참을 수 없는 말을 뱉어냈고, 그의 말에 휘말릴 뻔한 그때, 같이 나갔던 선임 반장님이 엎드린 채로 그냥 내려가 보자고 말씀하셨다. 결국 우린 보호자의 험악한 등쌀에 못 이겨 한발 한발 위험하게 내려갔다. 환자에게 연신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된다고. 다행히 환자를 안전하게 데리고 내려왔지만 가파른 계단을 용을 쓰고 내려온 탓에 허리와 어깨 그리고 등의 통증이 사라지질 않았다.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우리는 병원 앞에서 잠깐 몸을 스트레칭하고 있었다. 그때 환자의 보호자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동안 잊을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역시... 때리려고 해야 말을 듣지..."
우리 세 명은 순간 멍해졌다. 공무원이 공무를 하는데 나이가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선임 반장님은 곧 50을 바라보는 나이였고, 보호자는 20대 초중반이었다. 아무리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웬만한 일로는 감정의 동요가 없던 반장님이라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그의 말에 대꾸했다간 더 험한 말을 들을 것 같아 우린 그냥 침묵으로 일관했다. 몸보다 마음이 너무 지쳐버린 하루였다. 월급을 받으며 하는 일이긴 하지만, 타인을 돕는 일을 하고, '때려야 말을 듣는다'라는 동물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으니 요즘 말로 참으로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듣는 욕설과 인격을 깎아내리는 말들에 응전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다면, 분리수거가 되는 쓰레기통이 가슴속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차와 충돌한 오토바이 운전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후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한 분이 나와서 말했다.
"접수하세요."
환자가 말했다.
"다리를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접수를 하러 갑니까?"
"그래도 접수는 하셔야 되는데요"
내가 말했다.
"저기 접수처에 계신 직원 분 잠깐만 오셔서 접수하면 안 되나요?"
"됐어요 내가 갈게요."
환자분은 화가 나서 외쳤다.
나는 혼자 가려는 환자를 말리고 말했다.
"환자분 계세요. 제가 선생님 인적사항 아니까 제가 접수해드릴게요."
"다른 XX병원에 갈걸..."
환자는 조그맣게 혼잣말을 했다.
그때였다.
"왜 XX병원 가시려는 분을 여기로 데려오셨어요?"
당시 병원 근무자의 말이었다. 난 당황해서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잘 못 들었나 해서요."
"아니에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처음 환자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의 짜증 섞인 대응과 목소리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성의 없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말로 환자가 분노하자 그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려는 언행. 묵과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
"왜요?"
"선생님 방금 하신 말씀 제가 들었는데 그게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아요? 그리고 처음에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의료진이시면 뭐 때문에 오셨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리 아프신 분을 직접 가서 접수하라고 종용하고, 선생님 말에 환자가 화내면서 다른 병원 갈 걸이라고 얘기하니까 구급대원들에게 왜 여기 데려오셨냐고 탓하시고, 이건 아닌 거 아닙니까?"
"환자분이 다리 아프신 거는 몰랐고요. 그리고 본인 입으로 XX병원으로 갈 걸이라고 말하시는 거 대원님도 들었잖아요."
"그 원인 제공을 선생님이 하셨다고는 생각 안 해요?"
"지금 저 겁주고 창피 주는 거예요?"
"그게 아니죠."
"저는 그렇게 느끼는데요."
"예 알겠습니다. 그만하시죠."
"아뇨 사과하세요."
"제가 뭐를 사과해야 됩니까?"
"병원에서 직원들 보는데서 저 창피 주신 거요."
"제가 사과할 일은 아닌 거 같고, 환자분한테 선생님이 사과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고는 병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네.. XX입니다."
"어 팀장인데. 혹시 어제 XX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래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래 네가 잘못한 게 없는 건 맞는데. 좀 참지 그랬어. 문제가 생겼다. 그 사람이 인터넷에 글 올렸다더라. 구급대원이 갑질했다고."
"네?"
"사과를 해야 내려준단다."
"아... 근데 진짜 잘못한 게 없습니다."
"알지. 그래 알았다. 다시 연락할게."
"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해야 될 일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사과라도 하겠습니다."
"그래.."
전날 저녁의 그 사건은 내 생각보다 일이 커졌고. 결국은 우리 대장님이 직접 병원 근무자를 찾아가 사과를 하셨고. 그제야 사과를 받아주고 자신에게도 잘못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식의 끝을 맺으며 그날의 글을 삭제해 주었다.
그리고 난 한동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고, 현장에서는 기준도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상처는 꽤 컸었다. 그날 이후로 점점 출동 현장에서 감정을 잃고 기계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내가 하는 일에 큰 회의감을 느꼈다.
어떠한 부당함에도 참아야 하는 건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안위를 위해서는 그게 정답이다. 괜한 말을 한마디라도 더했다간 나뿐만 아니라 주변(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이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최선의 길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나같은 작은 개인이 제대로 된 세상을 운운하며, 한 번 참으면 될 일을 한 번 더 참지 않아서 일을 키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망설임이 들어가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길이 아님을 알았으면 멈춰야 한다. 길이 아님을 알고도 나아가다간 결국은 그 험한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되돌아오는 길이 너무 험하면 그 길을 다시 올래야 올 수가 없다. 세상은 자정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믿음의 이유는 자정능력 안에는 사람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진 않는 지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개인적인 불만과 진짜 바꿔야 할 것들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이 그저 내가 편하기 위한 불만은 아닐까?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해야 하고, 나를 되돌아볼 시간도 필수적으로 가져야 한다. 불만이 많아지면 그 변화가 정말 중요한 변화인가에 대한 진위를 가릴 때 진실성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장에서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도움을 주신 고마웠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이송한 환자들을 성실히 돌보아준 진정한 의료진들을 몇 명의 강렬한 기억을 준 그 사람들 때문에 잊지 않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