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그의 어머니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들(3)
오전 7시에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신고자와 만났다.
"어머니가 연락이 안됩니다."
신고자는 일흔을 목전에 둔 노인이었다. 노인은 매일아침 7시에 연세가 90이 넘은 자신의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기위해 그들이 살고계시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날도 부모님의 집에 방문을 했지만 평소에는 잠그지 않던 손잡이 부분이 잠겨 있었다. 노인이 가지고 있던 열쇠로는 이중으로 잠긴 윗부분만 열 수 있었다. 잠겨있는 집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노인은 답답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119에 신고를 했다. 노인은 차분한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침착한 목소리로 현관문을 열어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아들임이 증명되어야 하며, 경찰의 입회 하에 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했다. 마침 노인의 가방엔 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들이 있었고(부모님을 모시고 여러곳을 다녔기에 보호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처음부터 신고가 문개방과 신변확인 요청이었기에 구조대와 경찰들도 곧 현장에 도착했다. 오전 일찍 들어오는 신변확인 요청이나 심정지 출동은 새벽시간 동안 환자 혼자 방치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침에 숨을 쉬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는 내용의 신고건은 이미 골든타임을 넘긴 경우가 많았다.
그날의 출동건도 우리는 대충의 상황을 마음에 준비한 채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우리는 장비를 챙겨서 문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하지만 같이 기다리고 있던 노인의 빠른 움직임을 재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던 노인은 마치 아이가 엄마를 부르듯 외치며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엄마!! 엄마!!
연신 엄마를 외치며 이러뛰고 저리뛰어다니던 아들은 베란다 문을 열더니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 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엄마..왜 문을 안여셨어요.."
할머니 한 분이 베란다에서 서계셨다. 다리가 불편하신지 베란다에서 부엌까지의 짧은 거리를 좀처럼 나오지 못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안위를 확인한 채 주저앉아 버린 아들은 어머니가 힘들게 힘들게 움직이는 것을 보자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할머니를 부축했다.
"어머니. 왜 말도 안하시고 문도 안여셨어요?"
아들은 거실에 나와서도 약간의 원망섞인 말을 눈물에 섞어 하소연 하듯 물었다.
할머니에 대한 호칭은 어느새 엄마에서 다시 어머니로 돌아와있었다.
급박한 상황이 되자 아들은 '엄마'를 찾았다. '엄마'가 '어머니'로 바뀐건 '엄마'가 자신의 능력 밖의 이유로 잘못되었을까봐 불안해 하는 어린 아들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괜찮은 것이 확인 되었으니 이제 당신의 능력으로 돌 볼수 있다는 무의식속의 심리변화와 일치한 것 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찬바람이 부는 베란다에서 한참을 계셔서 저체온이었고 우린 병원으로 할머니를 이송했다.
노인은 다시 아이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우리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병원으로 이송중 할머니에 들은 바로는 할머니는 여섯시쯤에 일어나서 베란다로 반찬을 꺼내러 나가셨는데, 갑자기 바람때문에 베란다 문이 닫겼고, 닫힐때의 충격으로 낡고 오래된 문이 잠겨 안에서는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꼼짝없이 베란다에 갇혀 한겨울 새벽날씨에 한시간을 떨고 계셨던 거였다. 아들이 집앞에서 와서 어머니 어머니하고 부르는 소리까지 들었으나 할머니의 대답은 야속한 베란다 문과 현관문에 갇혀 집안을 맴돌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있던 아들은 '엄마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라며 계속 흐느꼈다.
일흔살의 가까운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아이가 되었다가 어른이 되었다를 반복했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시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뀐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식은 부모를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어린시절을 보내고, 조금 더 크면 부모도 부모이기전에 한명의 완벽하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부모는 봉양해야할 대상으로 내가 곁에 없으면 불안한 존재가 된다. 반면 부모의 시선은 언제나 그대로다 자식이 작든 크든 언제나 불안한 존재로 보인다. 어디 몸이 다치지 않을까. 어디가서 마음이 다쳐서 오지 않을까.
그날의 출동에서 나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불안한 존재로 바라보는 인생의 시점에서 노인이 된 아들이 아이가 되었다가 어른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들은 부모가 불안해서 울었고, 부모는 아이가 울며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
서로를 불안한 존재로 인식하기때문에 더욱더 서로의 곁에 머무려고 하는 그런 모습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닐까.
불현듯 어린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에 살았던 난 친구들이 한번씩 우리집으로 놀러오곤 했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올라가야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집이 나왔는데, 그날 늦게 까지 우리집에서 놀던 친구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제 돌아 가야한다며 우리 집을 나섰다. 난 마을앞 버스정류장까지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나갔고, 친구가 버스를 타는 것을 보고 버스가 출발하기전에 길을 건너기위해 버스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때 갑자기 버스 뒤에서 달려오던 택시와 사고가 났고 난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땐 택시안이었고, 난 택시운전기사님이 데려가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누워있던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밖에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입고 계신 옷이 다 풀어지고 땀에 흠뻑 젖은 아버지가 한쪽 신발만 신고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들어오신걸 보았다. 난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그때의 아버지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를 확인하신 아버지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때의 아버지의 표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찰나에 엄청나게 많은 표정이 지나갔다. 아들이 괜찮은 걸 확인하신 뒤 분노가 밀려오셨는지 아버지는 택시운전기사님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셨다. 뭐라고 하신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의 기분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한쪽에 아이러니하게도 기분좋게 박혀있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사랑을 그때의 표정으로 확인한다. 살아가면서 가끔 원망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때의 아버지의 표정이 많은걸 희석 시켜주었다. 이미 30년이 넘은 일이지만 그때의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기억을 할 것같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친구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밭에서 일을 하고계셨는데 내가 내려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교통사고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는 홀린 듯이 슬리퍼만 신은 채로 길로 뛰어나가셨고, 도로위에 내 신발이 흩어져있는 것을 보고는 이성을 잃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읍내까지 가신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발바닥 껍질이 다 까졌는데도 아픔도 못느끼셨다고 했다. 몇 번을 들은 얘기지만 들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그런 부분을 읽은 적이있다.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고행을 떠난 젊은이 앞에 노승이 나타나 말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고행을 하는고?"
"부처를 만나 진리를 깨우치고 싶습니다."
"부처는 멀리 있지 않네."
"어디에 있습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자네가 왔노라고 외치게 그러면 머리를 산발하고, 옷이 헝클어진 상태로 신발을 뒤집어 신고 뛰쳐 나오는 사람이 당신이 만나야 할 부처네."
그렇게 청년은 곧장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집앞에서 내가 왔노라 외치자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옷도 제대로 못갖추고 신발마저 뒤집어 신은 자신의 어머니가 대문밖으로 울음과 눈물이 섞인 채로 뛰쳐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의지할 수 있는 신이 되고싶어한다.
그래서 난 나의 부모를 믿고 의지한다. 그리고 나의 신이 능력을 잃었을 때 해줄 수 없음을 슬퍼하지 않도록 준비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