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근무를 오래 하다 보면 날짜를 구분하는 숫자의 벽이 옅어지고, 그 자리를 한글이 대체를 한다. 몇 월 몇 일 아니라 첫번째 주간, 두번째 야간 등으로 기억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래서 벌어졌던 어떤 일을 그 당시에 느꼈던 주변풍경이라든지 계절의 냄새, 그리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옷차람 등으로 더듬어나간다. 그래서 기억의 멀고 가까움이 희미해진다. 최근에 벌어졌던 일이 굉장히 멀게 느껴지기도, 그런가 하면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 일이 사실은 꽤나 오래전에 벌어졌던 일이었단 걸 알게된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정확한 시점을 알게 될 때 내심 놀라는 일도 잦다. 그런 이유로 24세 겨울을 기점으로 이후의 시간적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지나간 어떤 일들의 벌어진 과정은 머릿속에 온전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발생한 시점이 언제였는지 그리고 무슨 계절이었는 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지나간 몇몇 사건들은 어디에서 생겼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처와 같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 기억들은 기억하려는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원치 않는 동반자와 같은 그 질긴 인연이 어느샌가 이어져 있기도 한다. 얼굴에 난 상처와 같이 눈에 보이는 상처는 계속해서 신경이쓰여서 애써 그 상처를 지우려고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상태로 지내다가 몸을 씻을 때나 옷을 갈아입을 때 한 번씩 보고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 생긴 기억의 상처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상처와 같이 항상 우리를 신경쓰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끔씩 보이는 그 상처를 애써 지워야할 지 아니면 그냥 놔둬도 되는 지에 대한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대부분의 날은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다가 가끔씩 아문줄 알았던 그 기억의 상처는 또 한 번 벌어져 마음을 거슬리게 하기때문이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큰일이 벌어질 때는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 시간이다. 이유는 주변의 시선 부족이다. 낮이나 이른 저녁에는 거리에도 사람이 많고, 같이 지내는 가족들도 깨어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신고가 가능하다. 그래서 일이 심각하게 진행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초기에 대처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새벽에는 어느 곳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 시간의 현장은 거리에서든 집 안이든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경우가 많다. 그게 화재현장이든 구급 현장이든 마찬가지다.
"네 119 구급대입니다. 지금 출동 중인데 환자 상태가 어떤가요?"
"빨리요 빨리요 빨리요"
"지금 최대한 빨리 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현장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신고자에게 필수적인 것들을 물어보는데 그날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신고였기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화상으로는 더 이상의 질문과 보호자를 진정시키려 노력은 마치 우리와 보호자의 전화기 사이에 파쇄기가 놓인 것처럼 우리의 말을 중간에서 찢어버리고 공중으로 흩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명이 걸린 모든 상황이 급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출동하는 대원은 최대한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구급대원도 인간인지라 아기의 경우에는 그 마음이 컨트롤 하기가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어렵고,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달리는 구급차에 채찍이라도 가하고 싶은 마음이 운전중에 계속해서 올라왔고, 현장 도착 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각자 분주해졌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지만 도착까지의 심리적 거리는 그 몇 배로 느껴졌다. 아이의 어머니는 우리가 느낀 그 심리적 거리보다 몇 배는 더 길게 느꼈을 터였다.
도착해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고,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아이의 엄마는 이 세상에 다시 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노와 자책 슬픔이 그 작은 얼굴에 모두 들어있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망설여지지만 인간은 누구나 얼굴이라는 공간에 눈 둘, 코 하나, 입 하나를 가지는데, 그 제한된 몇 가지의 도구(?)로도 저리도 많은 감정을 얼굴에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하는 어떤 행위로도 그 얼굴의 표정을 나타낼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림으로든 글로든 무엇도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표현할 수 없다.
아이를 옆에서 재우고 깜빡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시간이 꽤 흐른상태였고, 아이가 이상해서 보니 숨을 쉬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상황은 위로의 대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그 마음의 틈이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면 상처가 더 벌어질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말을 꺼내기도, 어떤 행동도 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마치 두꺼운 철문이 우리 앞을 막고 있는 듯 했다. 우린 어떤 것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우리가 해야 할 필수적인 절차를 위한 질문도 꺼내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현장을 떠난 후에도 우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그 분위기를 이겨내고 간신히 꺼낸 한마디는
"아.. 정말.. 아이들 사망은 적응이 안 된다"였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죽음과 질병이란 것에 면역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죽음과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은 성인의 그 모습보다 수백 배는 마음이 아리다.
뜨거운 커피포트기의 선을 잡아당기고 놀다가 펄펄 끓는 물이 생식기에 쏟아져 돌도 지나지 않은 여자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프다는 개념을 알지도 배우지도 못했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목놓아 울며 연신 "아파. 아파. 아파"하고 외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이가 우는 내내 쉬지도 않고 타들어가는 속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아이의 아픔만큼이나 그 아픔이 가슴으로 오지 않았을까.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를 의료진에게 맡기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나도 모르게 코가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났다.
출동 나간 모든 이들의 감정에 이입을 한다면 아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모든 상황에 꽤나 무뎌졌다고 생각 하지만 아이들의 눈물과 아픔은 그 생각을 비웃듯 나를 다시 신입의 마음으로 돌려 놓는다.
이제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출동을 나가서 봤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은 괜찮을까? 이제 아팠던 순간은 잊고 잘 지내고 있겠지?
육아를 해보니 부모의 마음을 알겠고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가 다치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알게 되었다.
감기에 걸려 평소보다 조금만 쳐져있어도 안쓰럽고, 넘어져서 피부가 까지기라도 하면 내 몸이 다친 것보다 더 아프다. 그래서 아이의 순간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그때의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난다면, 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