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구급대원이 만나는 세상

매일 만나는 낯선 세상

by 홍 필구

오후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을 하고, 오전 근무자와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입사한 지 3년 차 정도였던 나는 출근하면 담당하고 있던 업무뿐만 아니라, 컴퓨터라는 최첨단 기계(?)를 마주보고 앉아서 눈을 찌푸리고 목을 쭈욱 뺀 거북과 같은 모습으로 분단위로 질문을 쏟아내던 선임들의 행정업무까지 그냥 나의 업무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출근과 동시에 그들의 컴퓨터 관련 행정 업무는 댐에서 방류한 물이 호수로 흘러들어 가는 것처럼 시원하게 나에게 콸콸콸 흘러들어온다. 문제는 그 호수(나)가 맡고 있는 댐(선임)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출근 후 업무 시작전에 열리는 회의 때마다 오늘은 어느 댐에서 나에게 물을 방류시킬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팀장님과 구급 대원이 주고받는 대화가 내 귀로 들어왔다.

"오늘 갑자기 구급대원 한 명이 장기 병가를 쓰게 되어서 인원을 한 명 충원해야 합니다."

구급 대원이 말했다.

"아.. 그래? 그럼 누구랑 같이 하면 좀 손발이 맞을 거 같은데?"

"홍반장이랑 하면 손발이 맞을 거 같습니다."

"...? 네??

난 당사자의 동의 없는 갑작스러운 스카우트 제의에 나도 모르게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홍반장 괜찮아? 구급차는 타본 적 있어?"

팀장님이 물었다

"아니 없습니다."

난 타본 적이 없고, 그래서 그 일의 적임자가 아니란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짧고 굵고 빠른 대답으로 나의 의지를 소심하게 표명했다.

"어차피 동계급 직원들 타본 적 있는 사람 별로 없고 그중에 선임이고 빠릿빠릿하기도 해서 같이 타면 크게 무리 없을 거 같습니다."

구급 대원이 말했다. 난 가자미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지만, 구급 대원은 애써 나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팀장과 말을 이어갔다.

명확하게 나의 의견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난 소심했고 웃으면서 의견을 피력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더이상 말을 했다가는 지금 느끼고 있는 못마땅한 감정이 신경질적으로 나올 것 같아서 일단은 그 둘의 대화에서 잠깐 빠져 있기로 했다.


'알아서 처리해주시겠지. 내가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몇 갠데. 지금 여기서 구급차까지 타라면 그건 진짜 양심 없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일터에서의 짐작은 활이라곤 올림픽 시즌에 TV를 통해 본 게 전부인 의욕 넘치고 힘만 센 청년이 쏜 화살처럼 과녁을 심하게 빗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난 평소에도 일터에서의 나의 짐작과 예상을 크게 믿고 있진 않았다.

"그럼 홍반장이 병가 간 직원 복직할 때까지 구급차 같이 좀 타라"

역시 내 짐작은 빗나갔다. 아니지, 짐작이 빗나갈걸 알고 있었으니 맞췄다고 해야하나.

"아 진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갑자기 이러면 어떡하냐?"

"미안해. 나도 갑자기 연락받은 거라 다른 사람 이름 꺼내면 너무 불편해하고 너한테 얘기하면 죽어도 안된다 할 거 같고, 그래서 그냥 그랬어."

"하... 며칠 동안 해야 되는데?"

"한..."

"한 일주일?"

"달"

"뭐?"

"한 달"

"이 씨..."

구급 대원이었던 그녀는 나와 동기였다. 동기긴 했지만 내가 두어 살 어렸다. 난 임용받을 때 다른 동기들과는 혼자 떨어진 곳에 배치받아서 알고 지내던 동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동기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없이 지냈었다. 그 후 인사이동으로 그녀를 만났고 그나마 직원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허물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나는 입사했을 때 갓 제대한 군인티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서 '동기끼리는 그냥 다 반말하는 거 아니야?'라는 철없는 생각과 '사회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건가?'의 중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반말도 그리고 존댓말도 아닌 어중간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애매한 말을 사용하면서 뭔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존댓말을 써야 하나? 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 갑자기 존댓말을 정색하면서 쓰는 것도 좀 어색한데'라고 미안함 섞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갑작스런 강제 스카우트 후로는 그녀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며 그런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 좀 더 건방지게 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만큼 그당시에는 구급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었던거 같았다.


난 일찍 소방서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나의 나이는 24이었고, 동기 중에는 군대를 다녀오지않은 여자 동기들 둘 정도 빼고는 내가 가장 어렸다. 그래서 사회경험이 없었고, 세상을 잘 몰랐다. 무지했기에 겁이 없었다. 겁이 없던 나였지만 소방서에 들어오기 전부터 하나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구급차를 타지는 말아야겠다. 내 손에 누군가의 목숨이 잠시라도 맡겨진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그건 당연히 엄청난 전문가의 영역이고, 나 같은 일반인(?)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출동한 현장의 환자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능력 있는 구급대원을 만났으면 어쩌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을 능력이 부족한 내가 가서 그들의 생존 기회를 놓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때 받았던 스카우트는 구급대원 세 명중 중간에서 시키는 일을 빠릿빠릿하게 해내면 되는 일이었다. 환자 주처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감을 덜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해본 적이 없고, 또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던 업무였기에 평소보단 긴장을 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구급 업무는 시작이 되었다. 무난하게(?) 배가 아픈 환자를 이송하고, 교통사고로 머리가 어지럽다는 환자를 이송했다. 생각보다 출동이 잦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곧 적응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상 일은 방심할 때 터지는 법이다. 복싱 시합을 해도 들숨을 쉬는 찰나에 배를 맞고, 팔이 아파서 잠깐 가드를 내릴 때 안면을 강타당하는 것처럼, 그날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충격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새벽이었다. 비가 미스트처럼 흩날리다가 이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서양의 음악이 음전체의 조합을 중시하고, 국악은 한음 한음에 온 정성을 다하는 느낌이라면 그날의 새벽 비는 마치 국악처럼 한 방울 한 방울 정성스럽게 땅에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두번의 음으로 나뉘어서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툭 툭 툭이 아니라 투욱 투욱 투욱.

우의를 입지 않고 돌아다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눅눅하게 젖을 거 같고, 그렇다고 우의를 입자니 굉장히 습해서 입는 순간 땀으로 옷이 눅눅해질 것 같은 날씨였다. 우의를 꺼낼까 고민하던 차에 신고가 울렸다. 추락환자라고 했다. 신고내용이 명확하지 않았고, 사고 현장은 우리가 대기하던 장소와 지근거리였기 때문에 상황을 채파악하기도 전에 현장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도심지의 한 복판이었지만 불필요한 가로등은 꺼져있었고, 슬로 모션처럼 내리는 비는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운 우의를 입은 신고자가 말없이 구석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고, 난 더 묻지 않고 랜턴을 현장을 비췄다. 랜턴의 불빛 사이로 비치는 빗줄기와 빗줄기에서 흩어지는 먼지 같은 물방울들이 시야를 가렸고, 난 바로 앞에 가서야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사체였다. 심장의 박동을 확인하지 않고도 사체라고 확신을 가진 이유는 그 사람의 온전치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하체와 상체가 한 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처음 본 것은 하체였다. 랜턴을 휘두르며 상체를 찾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상체가 있었고, 하체와 상체가 이어져야 할 부분에서 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파트 고층에서 몸을 던져 추락하면서 벽에 부딪히며 그 충격으로 상하체가 분리된 것이었다.

신중한 느낌의 비가 내렸기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마음이 가라앉았고, 흥분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나는 침착하게 사망 확인을 하고, 경찰을 부르고, 현장을 경찰에게 인계했다. 그리고 우린 현장을 나왔다.

하지만 그 후에 나간 출동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현장이 종료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렸던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애써 내 마음을 누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에 퇴근하면서 동기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이 빈번하냐고.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자기도 정말 오랜만에 본 처참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10년이 넘게 구급차를 탔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임팩트를 준 몇몇의 사건들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다고 지금은 믿고 있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기억 어디 저편에 박혀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급대원의 일은 최악을 염두해두어야 하기에 일을 하면서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 기억을 꺼내며 내가 맡았던 그들에 대해 말을 하기에는 그 당사자에겐 참 미안한 일이다. 우린 항상 인간이 가장 예민해 있을 때의 사람을 상대해야 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장이 항상 힘든 건 아니며 처참한 광경만 보는 것만도 아니다. 때로는 환자나 환자의 가족이 평생 가슴 깊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아이가 감정이 솟구쳐 올라 울분을 토해내며 엄마에게 말하듯이 인생의 후반부를 살고 있는 그들도 울면서 또는 체념하듯 오늘 처음 보는 구급대원에게 전반에 걸친 그들의 인생을 들려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평소에 찾아 듣던 어떤 명사의 강의나 성공 스토리가 아닌 우리와 참으로 많이 닮아있는 누군가의 평범한 인생을 생생하게 듣게 된다. 모든 인생은 참으로 극적이다. 극적이지 않은 인생은 보기 힘들다.

그들의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값진 것들도 많이 있다. 시골에서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만나면 젊은 사람들의 깨달음이 이미 그들에겐 일상적인 용어가 되어있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그들의 일상적 대화를 듣고있노라면 철학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가끔은 상상하기도 힘든 삶을 사신 분들도 많고, 본인의 삶이 고단했다고 생각조차 못하시고 사신 분들도 많았다. 자기 시대 때는 그게 당연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때로는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실 때도 있다. 심오한 철학적인 얘기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와줘서 고맙고 안심이 된다. 마음이 놓인다. 복 받을 거다 등등의 말들. 그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그들의 진심이 조금도 새지 않고 온전히 마음으로 담기는 느낌이 든다.


내가 만난 그들의 인생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고, 그들은 오늘 119라는 낯선 사람들을 만날 거란 생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특수한 직업의 우리를 보고 더 마음에 긴장이 와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급한 마음에 우릴 부르긴 했지만 우리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 현실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반증하는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안심시키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은 때론 상상이상으로 강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그 무엇보다 나약하기도 하다' 는 것이다.

크게 다치지 않아야 할 사고에 상처하나 없는 얼굴로 심장이 멎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때론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론 주변의 상황에 눌려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현장이든 함부로 예측을 하면 안 된다. 현장은 사람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란 불시에 들이닥치는 것이다. 교통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가령 손자랑 놀아주다가 이제 자러들어간다며 안방으로 들어간 할아버지가 아침에 주검이 되어 발견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갑작스럽게 생과사를 경험한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감정 흐름을 자주 목격해온 나로서는 부모님들에게 더 잘해야겠다.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어야겠단 생각을 자주 한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는 살아있다면 항상 가질 수 있지만. 우리는 매 순간 그 기회를 의미없이 날리고 있다. 나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고, 각자의 인생은 곧 그들의 세상이다. 또 그들의 세상에 속한 주변 사람들의 우주이다. 그들의 세상은 항상 분주히 돌아가고 있고, 그들의 세상이 잠깐 문제가 생겨 멈출 때 우린 낯선 그들을 만난다.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나의 세상과 그들의 세상은 그렇게 조우한다.

이 일이 아니라면 평생 모를 세상이고 그들의 우주다.

매일매일 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에 대해 가끔씩 생각한다.

삶의 경험이 별로 없던 어린 사람은 어느새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되었고,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하며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그 사람은 겸손해졌으며, 경주마 같은 시야로 세상을 보던 그 젊은이는 조금 더 떨어져 세상을 관망하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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