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도 말했었지만, 난 정말로 구급대원만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의 신체를 케어하고 또 위급한 환자에게 그에 맞는 처치를 하고, 그래서 그들의 생명을 병원 이송전 짧게나마 다룬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엄청나게 마음이 살벌해지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이 주위가 산만하고 손이 예민하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소방에서도 구급출동대원들은 그에 준하는 자격자를 특채로 선발을 했고, 그 업무는 그 자격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출동 인원이 부족해서 임시방편으로 자격증이 없이 간단한 교육을 듣고 임시적으로 구급대원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보통 2인이 한 팀이었고, 2명 중 1명은 자격자였으며 1명은 교육을 이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구급업무에 발을 담그면 구급 유경험자로 인식이 되었다. 그래서 인원이 부족할 때마다 구급업무에 동원되어야 할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결코 일이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없었고, 그런 능력 자체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피하려고 하면 이상하리만치 그 기피의 대상은 추적장치를 달아놓은 미사일처럼 꼬리를 물고 기피하려 했던 그 상대방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온다.
인생은 그런 것이란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을 남겼지만,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그릇이 안된 나에겐 그냥 포기하고 정면으로 미사일을 맞아라 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난 결코 즐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도망다니던 그 상황을 난 온몸으로 받았고, 결국 경험치는 느껴야지 쌓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구급 출동 첫날 내가 목격한 비 오는 날의 충격적인 장면은 나를 심리적으로 움츠리게 했다. 첫날에는 그냥 잠깐 놀란정도 였고 이게 앞으로 내 기억속에 남아있을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그 장면이 이상하게 떠올랐다. 지인들과의 대화중에도, 샤워를 하다가도, 주차를 끝내고 시동을 끄는데도 갑자기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곳과 타이밍에서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거나 그 기억으로 도망치려고, 또는 꿈에서 그 장면이 나타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어렸을 적에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날의 장면이, 나 이외에는 세상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은 정말 사소한 그런 기억이 문득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또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출동벨이 울리고,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인가라는 의심이 들면 괜스레 몸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 후로 한 달동은 구급대원 보조(?)로써의 역할은 충실하게 문제없이 잘 해냈다.
하지만 그때쯤 난 몹시 지쳐있었다. 왜냐하면 난 화재진압대원이기도 했고 구급대원이기도 했다.
화재출동이 걸리면 화재진압복을 입고 소방차에 탑승해야 했으며, 구급출동이 걸리면 구급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출근해서는 숨돌릴 틈이 없었다. 그즈음 응급구조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교육대상자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시달되었다. 여기서 응급구조사란 구급차를 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데 처음부터 구급대원으로 소방서에 입사한 사람들은 1급 자격증 또는 간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들어와 바로 구급대원의 보직을 부여받지만, 나같이 일반 공개채용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구급업무를 처음부터 받지 않고, 주로 일선 안전센터에서 화재진압대원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한다. 가끔씩 인원이 부족한 경우 구급 업무를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를 대비해 소방에서 추진하는 9주 교육을 받고 매년 말에 치르는 시험을 통하여 응급구조사 2급의 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이었다. 그럼 그는 자격자가 되어서 구급업무에 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의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구급 유경험자였고, 게다가 몸도 마음도 지쳐 '9주 정도 교육이라도 가서 밤낮이 일정한 생활이라도 하자'라며 반 포기 상태로 교육을 받으러 간 나는 처음의 소극적인 마음 온데간데없이 성실히 교육에 임하였고 최종 시험에도 합격했다.
이윽고 난 구급대원으로 완전 탈바꿈이 된 것이었다.
처음에 절대로 그것만은 하지 않아야지라고 다짐했던 길을 조금의 경로 이탈없이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직장인의 앞 날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난 조금씩 구급대에 적응을 했고, 응급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후배들이 들어왔고, 그들에게 나만의 노하우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난 돌팔이 약장수 같은 존재라며 얘기하고 다녔지만, 세월이라는 강에 자연스럽게 구석구석에 끼는 이끼와 같이 나의 구급대원으로써의 자부심도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이끼처럼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습과 현장 경험으로 만들어진 응급 지식과 응급상황에서의 대처요령같은 구급대원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그런 지식들이 체화되면서 이끼같은 자부심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까지도 난 내가 맡은 업무에 있어서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밥상의 깍두기 같은 존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났다.
신입 직원이 들어왔고 그는 1급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가진 자격자였다. 신입직원은 기초교육은 수료하고 오지만, 실전에 투입 되었을 때, 현장이 주는 초반의 위압감은 그들을 움츠러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출동은 신입과 베테랑을 가리지 않는다. 경험이 없으니 다소 편안한 출동을 보낸다거나 하는 그런 배려는 존재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출근과 동시에 신입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모든 상황을 케어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에게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의 신입직원과 나는 갑작스럽게 던져진 중대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당시에 구급차 운전을 하는 운전요원이었고, 신입 직원은 환자를 케어야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그와 나간 첫 출동은 냉정하게도 심정지 환자였다. 예상컨대 그는 자격자이긴 했지만 실제로 심정지가 온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뭘 해야 될지 정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난 알고 있었다. 이미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가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난 신입대원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CPR을 시작했으며 AED패치를 환자 몸에 붙이고, 리듬을 분석 후 빠르게 전기충격을 주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표정을 포착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환자분 제가 누르는 게 아프시면 고개를 움직여보세요"
환자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됐다. 바로 이송 준비 하자"
의식이 돌아온 환자를 나와 신입직원은 지체하지 않고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날듯이 이송했다.
얼마 후 환자가 완전히 회복하였다는 연락을 받았고,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환자분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우리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난 그제야 비로소 그리도 오래 걸렸던 스스로 납득할만 한 구급대원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 전에는 내가 과연 구급대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출동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면, 그 일이 있은 후 난 조금이나마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조금씩 같이 움직이는 대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대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떠밀리듯이 시작한 구급에서 사람을 살린 그 기억과 그의 가족들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는 희열이 나를 온전한 구급대원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람을 살리면 소방에서는 '하트세이버'라는 것을 준다. 나는 그것을 지금껏 4번을 받았다.
입사 전엔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내가 지금껏 4명의 목숨을 살린 것이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면 환자의 가족도 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경험을 통해 난 진정한 의미의 한 사람의 '평범한' 구급대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더 명예롭고 평생 뜻깊은 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