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할 줄은 몰랐다.

굳어진 채로 시간이 꽤 지난 줄 알았지

by 홍 필구

람은 타고난 성격이 있다.

외향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 성격이 급한 사람, 느긋한 사람,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주장이 강한사람, 타인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등 타고난 기질 그리고 어린 시절의 어떠한 사건 등을 계기로 형성된 성격은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의 성격에 고칠만한 점이 있음을 인지하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 이외에는 좀처럼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가 없다. 평소의 성격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마치 함수처럼 감정은 행동으로 변환되어 나온다. 그렇게 튀어나온 행동을 지켜보며 내면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은 항상 나의 편이다. 항상 나의 편인 감정을 모진 마음 즉 개관적으로 대하기란 어렵다. 감정은 끊임없이 나를 설득한다. 그 설득의 과정을 우리는 '자기합리화'라고 부른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형성된 자신의 성격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며 살아간다.


나 또한 타고난 성격을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다.

하지만 몇 번의 후회나 일상의 깨달음 그리고 더욱이 나의 직업이 아니었다면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몇 번의 상황들을 겪은 후 단편적으로 느꼈던 순간의 감정들은 조금씩 나의 근본적인 기질을 흔들어 놓았다.

나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도 못한 채, 마치 조금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어내듯 천천히 조금씩 나의 무언가를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가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어떤 사소한 계기로 잠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찰나의 타이밍을 만난다(그 타이밍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문득 그 타이밍이 나를 찾아 왔던 날. 겁이 났지만 천천히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난 어느새 그전과는 모양이 바뀌어 있는 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출동은 오로지 그 날 처음 만난 누군가를 위함이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사력을 다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은 가족도 또는 지인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들이고, 아마 평생 낯선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우린 낯선 자들을 위해 그 순간만큼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소중한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본능에 의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나를 바꾼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살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진심으로 대했지만 돌아오는 건 씁쓸한 비난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통상의 인간 관계에서 쓰는 가면을 현장에서는 쓰지 않는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이 빠르게 통하는 경험들 또한 분명히 일반인들보다는 더 많이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모든 출동에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극적인 연출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몇년에 한 번 천만 영화가 나오듯 우리 인생의 천만 영화는 나의 개인적인 삶에도 나오지만 타인을 위한 출동에서도 나온다.

천만 영화의 소재는 다양하다 액션, 멜로, 스릴러, 판타지 등

우리의 출동도 영화만큼이나 장르가 다양하다.

그런 다양한 장르의 조주연의 역할을 맡으면서 내면이 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라고 가끔 생각되기도한다. 몸과 마음을 직접 부딪히며 느낀 현장의 느낌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의 끝에 가보려 한다.

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구급대원들 중에서 지독히도 평범한 한 명이다.

하지만 모든 구급대원들이 같은 현장을 겪을 수는 없다.

모든 상황은 시간, 사람, 날씨, 주변환경 등 그 순간의 우연이 찰나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시간의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겪지 못했을 나만의 현장을 조금 글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나만의 특별한 경험, 그래서 그 시간에 그리고 그 장소에 마침 존재했던 내가 겪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의 마음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달해보고싶다.

낯선 이의 죽음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는 것, 또 나도 모르게 알게 된 낯선 이의 인생 등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었고, 그것이 나의 무엇을 건드렸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