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해야 하는 것

하지만 할 수 있는 것

by 홍 필구

꽤 오래전부터 환절기만 되면 엄청난 양의 콧물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재채기를 달고 살았다.

날씨가 추워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환절기 알레르기를 달고 살았다.

심할 때는 두루마리 휴지의 절반 이상을 다 쓴 적도 있다. 휴지로 같은 자리를 계속 닦아내니 결국 인중 언저리에 가벼운 화상을 입어 콧물이 흘러도 닦아내지 못하고 물로 씻어낼 수밖에 없는 지경에도 이른다. 코를 얼마나 풀어댔던지 코안이 헐어서 온종일 통증에 시달려 본 적도 있고, 심지어 코가 너무 막혀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코가 약했다. 유독 코피를 자주 쏟아냈고, 눈이 충혈이 될 정도로 재채기를 해서 환절기 기간 동안 두통을 달고 살았다. 코를 잘 풀지도 못한 꼬마 시절에는 결국 막힌 코가 뒤로 넘어가 40분의 수업시간을 입에 머금고 버텨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 기간이 주는 고통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다 마음도 함께 힘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환절기 알레르기를 위한 약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환절기만 되면 그 약을 상비해 두었다. 코가 가렵고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나기 시작하면 콩 한쪽보다도 작은 알약 하나를 물과 함께 삼키면, 하루종일 거짓말처럼 재채기, 콧물이 사라졌다. 두통 또한 그랬다. 타이레놀이란 신세계를 알게 되었다. 알약 두 알이면(난 두통이 오면 통증이 심한 편이라 2알을 먹어야 조금 더 일찍 통증이 사라졌다.) 지독히도 나를 괴롭혀온 통증이 어느샌가 느껴지지 않는 경험을 했다. 처음 약을 먹었을 때 너무나 새로운 기분에 그동안 그 약을 모르고 살았던 세월에 대한 통한이 밀려오기도 했다.


때론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제가 아닌 타인의 무심한 말이나 행동이 만들어낸 일로 긴 시간 머리를 싸매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거친 말들, 배려가 없는 듯한 행동 등을 듣고 보며


'참는 게 이기는 거다', '얘기해봐야 바뀌지 않고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될 뿐이다', '관계가 어색해 질 뿐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 그 언어와 행동들을 이유도 없이 견뎌낸다.

무엇보다 더 화가 나는 건 상대방은 자신이 상대방을 그토록 불편하고 분노케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가장 많이 마주하는 곳이 직장이다.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사이기 때문에, 또는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게 위해서,

그러니까 결국 기존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누군가의 무례함을 대책 없이 받아주고 있다.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도 몇 번의 그런 일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무례한 사람을 만나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 예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들 몇몇의 무례한 말 때문에 오랜시간을 분노하고 그 감정에 나도 지쳐간 적이 있었다.


그는 평소에도 항상 유쾌한 듯 행동했고, 자신의 말에 심취해 조금 편하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무례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단 둘이 있을 때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유독 곧잘 흥분을 하는데,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자존감이 올라가는 그런 부류였다. 불행하게도 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대부분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기분이 나빠도 그냥 웃어넘긴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농담을 비슷한 수준으로 되받아치면 그는 더 수위가 높은 말로 상대방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아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기서 감정만 소모될 뿐인 대화를 끝낸다. 더 이상 말을 주고받으면 싸움으로 번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스스로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 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그에게 악의는 없어 보인다(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깝게 지내던 그였지만 언젠가부터 그의 주변에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만나면 나에게 아무런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척 행동을 했고, 평소대로 행동한다. 나 혼자 그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혼자 그 사람을 싫어한다.

결국 우리 둘 간의 있었던 모든 불편한 상황과 그가 웃으면서 던진 올가미 같은 말들은 오롯이 나만의 것인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불편해하고 피하기 시작하면 결국 내가 설자리는 줄어든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 당시 내가 내린 판단은 그와 내가 이런 대화까지 오게 된 것은 상대방에게 '연장자이니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말을 편하게 하더니 해선 안될 말까지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누군가에게 호형호제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호형호제를 허락한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난 그 사람 하나 때문에 누군가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를 거부한 나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무례한 누군가 때문에 내가 한 발짝 물러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난 호형호제를 허락한 거지 말을 무례하게 해도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농담은 듣는 사람까지 다 편하게 웃을 수 있어야 농담이 되는 것이다. 누구 한 명이라도 불편해한다면 그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말은 떠나는 순간 시위를 떠난 활과 같이 더 이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게된다. 입을 떠난 말은 주변을 돌고 돌아 지금 나의 눈앞에 없는 누군가의 가슴에도 꽂힐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 후로 그는 회식자리에서 또 한번의 '말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난 후 훗날 밀려올 분노와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의 후회로 나 혼자 앓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확실하게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로 상처를 줬으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해서 그가 뭔가를 깨달았을 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당신 때문에 불편하다'라는 걸 인지 시켜줄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은 더 생각하고 말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한 번 더 경고를 하기가 너무 불편하다면, 그때는 피해도 된다. 그리고 생각하자 우리가 흔히 하는 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라고. 그렇다면 적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혼자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할 때보다는 덜 억울하지 않을까?


말을 가려서 할 능력이 없고,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농담을 할 능력이 없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유쾌한 사람'이 되기보단 차라리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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