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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필구 Nov 08.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6)

필구

"거기 뭐야!! 왜 모여있어?!!"

선생님이 멀리서 뛰어왔다. 강호는 불안한 표정으로 어딘지 모를 한 곳만 응시하며 거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졸도할 거 같았다. 그렇게 한 곳만 응시하던 그는 순간 표정이 바뀌더니 선생님이 교실에 오기 전에 교실문을 나가버렸다.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강호가 사라진 것에 관심도 둘 새 없이 의식을 잃은 복싱부를 업고 교실 밖을 떠났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119!! 119!!"를 목의 핏대가 곧 터질 것처럼 외쳤다.

교실에 남은 나는 갑자기 연달아 터진 상황에 멍해졌다. 

한참을 멍하게 서있던 나는 천천히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재진이와 중협이는 강호의 가방과 책상 그리고 의자를 치운다고 정신이 없었다. 강호의 흔적을 애써 지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그정도의 숨김으로는 강호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다.

강호가 그렇게 나가 버린 후 며칠 뒤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필구 네가 한 번 말해볼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강호는 어떻게 되었나요? 쟤가 연락해도 연락도 안 돼요"

"나도 지금 연락이 안 되니까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너한테도."

"....."

"자초지종을 말해봐. 선생님이 알아야 무슨 설명을 하지. 내가 듣기로는 네가 저.. 복싱부 이름이 뭐지.. 그래 태구, 태구가 너를 때렸는데, 강호가 갑자기 태구를 때렸다는 것까지만 애들한테 들었어"

"강호는 잘못이 없어요. 다 저 때문에 벌어진 거예요"

"그래 그러니까 무슨 일이었는지 말을 해봐."

난 몇 주전에 일어났던 일을 포함하여 그날 있었던 일도 한 번 더 말씀드렸다. 내가 같은 반 친구를 때렸고, 그래서 그 친구의 친구인 복싱부 태구가 나를 때렸고, 강호가 내가 맞는 것을 보고 태구를 때린 거 같다고.

"넌 왜 그 친구를 때렸는데?"

"제 자리에서 안 비켜서요."

"......."

"죄송합니다."

"이놈아 왜 그랬어 너 원래 이렇게 평소에도 친구들 때리고 그랬어?"

"그건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그래.. 너도 부모님 모셔와야 될 수 있다. 알고는 있어라.  그리고 강호 혹시라도 연락 오면 나한테 말해줘. 재진이하고 중협이한 테도 말하고."

"네.."

난 교실로 올라갔다. 재진이와 중협이는 교실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한여름날의 나무 옆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가 지난 여름날 도시의 가로수 옆을 지나가면 매미가 울음을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매미들 사이에 있는 이방인 같은 기분이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재진이가 주변을 천천히 서성대다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중협이가 먼저 말 걸었다. 

"선생님이 뭐라시던데?"

"강호한테 연락 오면 연락 달라시더라."

"응... 그랬구나"

"오늘 강호 집에 가보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갈래?"

내가 물었다.

"어.. 근데 오늘 집에 아버지가 배달할 거 많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하셨거든."

"그래.."

둘의 짧고 어색한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그들이 나를 멀리 하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제 상관없었다. 섭섭하지도 않았다. 진짜로 상관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의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상관없었다. 강호를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 말고는.

강호 집으로 갔다. 어머님은 강호가 잠깐 나갔다고 했다.

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강호는 오지 않았다. 계속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나왔다. 강호가 살고 있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30분 정도 버스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내려서 골목으로 10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친구의 집은 그냥 봐도 유복해 보이는 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큰 도로변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낯선 동네였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이런 이국적인 모습을 가진 동네가 있었나 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강호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잠시 낯선 곳에서의 하늘과 조용한 골목길에 방향을 잃었다. 가야 할 길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방향을 잃은 듯했다.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지만 이대로 집으로 바로 들어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 녀석을 만나고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강호 집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었다. 여기 있으면 왠지 만날 수 있을 거 같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 저 멀리서 얇은 패딩에 야구모자를 쓴 익숙한 걸음걸이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서 물더니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으며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강호였다. 그래서 그가 들어간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야!"

"아! XX 깜짝이야."

"ㅎㅎ 뭐하냐?"

밖에서 보니 학교에서 보는 것보다 반가웠다. 

"뭐야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그냥 얼굴 보려고 왔지 인마."

"우와 진짜 놀랐다. 경찰인 줄 알았다 정말"

급하게 담배를 끈 강호와 나는 구석진 곳을 벗어나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 개 춥네.."

강호가 얇은 패딩을 잡아 모으며 말했다.

"베지밀 먹을래?"

"오 네가 사냐?"

"당연하지. B 먹어라 형이 B사주께"

우린 편의점으로 향했다. 

베지밀을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가져갔다.

"베지밀 A 1+1인데 그래도 B로 하시겠어요?"

점원이 우리에게 물었다.

"야 그냥 A 먹어라"

내가 말했다.

"인마 베지밀은 B 지 어디서 형한테 A를 먹으라고 하냐 버릇없는 놈이. 빨리 계산해. 저희 그냥 B 먹을게요."

강호가 말했다. 

밖에서 단 둘이 만나니 밝고 말이 많은 놈이었단 걸 그때 알았다.

베지밀을 들고 다시 아까의 벤치로 돌아왔다.

"아 춥다 진짜."

"그렇네 갑자기 추워졌다."

우리 둘은 베지밀 병으로 목과 손을 비벼댔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너 학교에 연락은 했냐?"

"내가 안 하고 우리 아버지가 하셨다더라."

"아 그럼 오늘 내가 선생님하고 만나고 나서 아버님이 연락하셨나 보네."

"선생님?"

"어. 담임이 너한테 연락 오면 자기한테 말해달라 하더라고."

"아.. 그랬냐? 아버지가 하셨데. 그쪽 부모님 하고도 통화했고. 의식 돌아왔고 말도 한다더라. 말씀은 안 하시는데 저녁에 부모님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적금 깨서라도 합의금 줘야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아... 그러냐.... 학교는 언제 오는데?"

"나? 전학 가야 한다더라 씨 X ㅎㅎ. 그래서 말씀드렸지 학교 안 가면 안 되냐고. 어차피 아버지 일 이어서 할 건데 학교가 뭐가 중요하냐고."

"뭐라셨는데?"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한 대 맞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한 대 맞았어 뺨을 ㅎㅎ우리 아버지 평소에 말씀도 잘 안 하시고 자기주장도 크게 없으셨거든, 근데 그런 분한테 한 대 맞으니깐 아버지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

"전학 가냐 그럼?"

"한번 더 여기 있고 싶다고 빌어보고는 싶은데, 가라면 가야지 뭐."

"......"

"표정 X 같네 ㅋㅋ 표정 풀어 건방진 놈아 닌 건방진 게 어울려 계속 건방지게 굴어 인마."

"미안하다 진짜."

"네가 때려달라고 해서 내가 때렸냐? 그냥 열받아서 내가 그런 건데 뭐."

"그래도.. 내가 양아치 짓 한 게 원인이었잖아."

"그래 첨에 너한테 맞은 걔는 잘못 없지. 진짜 잘못한 게 없는데 너한테 한대 맞고, 지금은 지 친구한테 이른 놈처럼 되어있을 거 아냐 걔도"

"그렇지.. 아 진짜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말."

"난 알지."

"뭘?"

"너하고 순호 재진이."

"뭘 아는데?"

"필구야.. 나 솔직히 너한테 좀 화가 나긴 났었거든. 그래서 니 그렇게 기분 나빠서 양아치 짓 하는 것도 알면서 그냥 놔둔 거야."

"..... 그랫냐?"

"준호 병문안 갔었거든. 걔 상태 어떤지는 아냐?"

"....."

"왼쪽 무릎 아작 나고, 오른쪽 발목이 부서졌다더라"

"....."

"어쨌든 너한테는 아무 소리 하지 말라더라 네가 병문안 가자해도 절대로 같이 오지 말라고 하고, 너 그날 양아치들한테서 도망쳤을 때, 걔들이 너 이름 학교 다 얘기하라고 협박하고 때려도 순호가 입을 안 열고 버티니깐 재진이한테 협박했었다더라. 그런데 재진이가 너무 벌벌 떨고 있으니깐 순호가 걔들한테 욕 박고, 지가 재진이 꺼 까지 다 맞은 거지. 재진이가 준호 데리고 병원 갔는데, 걔들이 병원까지 따라와서는 너 있는데 말하라고 애를 말로 죽여놨다더라. 너무 무서워서 너 데리고 걔들있는데로 데려가려다가 이건 아닌 거 같아서 다시 발길 돌리려는데 걔들이 멀리서 눈치채고 뛰어온 거고."

"...."

"네가 걔들 때리고 도망친 것도 들었어. 너도 걔들 무서워서 못 돌아가 건 거니깐 재진이한테 뭐라 할 건 없는 거고 무서운 거는 어쩔 수 없잖아. 근데 다음날에 네가 재진이 때렸다는 소리 듣고는 좀 실망했다 해야 되나. 그래서 기분 안 좋은 거 보고도 혼자 뒀는데, 도저히 친구 맞고 있는 건 못 보겠더라..... 감동받았냐?"

"그래 이새X야 고맙다. 혼자 버려두고 도워줘서."

"중협이하고 재진이는 나랑 같이 만나서 순호한테 가봤어. 이제 절뚝거릴 수준은 되니까 학교에 와도 안되냐고 물어봤는데 절뚝거리는 거도 보여주기 싫다더라. 그냥 감기 제대로 걸려서 못 간걸로 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긴 하더라만은.. 근데 뭐 이제 너도 같이 가도 되지 않겠냐? 내가 다 떠벌렸으니까."

"그래 같이 가자."

"필구야. 난 우리가 같이 있는 게 너무 좋다. 중학생 때는 학교 정말 재미없었거든, 그래서 학교 간다 해놓고 다른 데 가서 놀고 그런 거짓말 많이 했는데, 고등학교 올라오고는 한 번도 학교 짼 적 없었다."

"어쩌라고 인마."

"그렇다고 ㅎㅎ"

"전학 가는 새끼가 갑자기 감상에 젖어서는.."

"전학 가면 못 만나냐 어차피 돌아도 이 근처지 뭐."

이제는 마주 앉은 친구 녀석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래서 난 조만간에 애들이랑 만나자고 하며 그 녀석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멀어져 가는 친구의 어깨가 커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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