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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필구 Nov 07.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5)

필구

살면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아침은 나의 그런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무심하게 밀물 때의 바닷물처럼 밀려왔다.

거대한 아침의 그림자는 분위기만으로도 나를 압도했고 나를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의 팔을 움직여 교복 바지를 입게 하고, 와이셔츠와 교복 윗도리를 입게 한다.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걸 저절로 하게 하는 아침은 위대하다기보다는 강압적인 존재였다.

너무나 거대한 존재가 나를 강제하면 그에게는 불평 한마디 할 수 없다. 아니 불평할 대상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결국 그 거대한 존재의 강제로 인해 만들어진 불평과 불만은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나의 내면을 향한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를 계속해서 혼자 되뇌면서도 나의 발길은 착실히 학교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눅눅한 바지는 나의 그런 마음에 제대로 한 몫했다.

엄마 몰래 손빨래해놓은 바지는 주름지고 눅눅했다. 초가을 날씨에 점점 방이 냉기를 품어가던 때라 하루 종일 펼쳐놔도 완벽하게 마르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바지 안에 갇힌 습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랫부분만 북태평양의 고온 다습한 기온이 머무는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지각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등교했다. 교실은 분주했고, 각 무리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교실의 소음이 모여 하나의 웅얼웅얼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소리는 매일이 다르지만 또 매일이 같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친구, 다른 자리로 가지 않고 앞뒤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 책을 읽는 친구,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동안 친구들과 떠든다고 눈여겨보지 않았던 교실의 낯선 풍경과 그들이 내는 소리가 저절로 눈앞에 펼쳐지고 또 들렸다. 전학 온 사람처럼 교실이 낯설었다.

 난 내가 가야 할 곳을 잃은 듯했다. 순호는 여전히 학교에 오지 않았고, 강호는 자고 있었고, 중협이는 복도에서 다른 반 친구와 말하고 있었다. 재진이는 뒷자리에 앉은 친구와 말한다고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시선을 피해 나의 자리로 갔다. 나의 자리에는 다른 아이가 앉아있었다. 조심스럽게 찾아간 나의 자리에 쥐도 새도 모르고 앉으려고 했는데 불가능해졌다. 짜증이 났다.

"야 니 자리로 가라."

난 짧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홍! 오늘은 뒤에서 안 놀아? ㅎㅎ 잠깐만 요것만 하고."

내 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는 자리 뒤에 친구와 '지우개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지우개를 손가락으로 굴려 상대방 지우개 위를 3번 차지하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비키라고 인마. 니 자리 아니잖아."

"잠깐만 이거만 하고, 진짜 잠깐만 이번판만 하면 돼."

"야..  나오라고. 진짜."

난 정색하며 말했다.

"..... 알았다"

그는 잠깐 나를 빤히 보더니 왜 화를 내냐라는 눈빛과 황당해하는 표정을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일로와 봐."

자기 자리로 가던 그 친구를 불러 세웠다.

"왜?"

친구가 대답했다.

"일로 와보라고."

친구는 옆에 걸어놓은 가방들을 피해 주춤주춤 나에게 걸어왔다. 

손이 닿을 거리까지 친구가 오자 난 친구의 뺨을 때렸다. 애초에 때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가 걸어오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행동이었다. 결코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순간 정적.

교실은 일순간 시간여행을 온 듯 조용해졌다.

"내 자리에서 내가 비키라는데 왜 그딴 눈빛으로 사람을 보냐?"

친구는 얼굴을 한쪽 뺨을 잡고 바닥으로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난 내 자리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칠판을 노려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내가 초조해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 그리 초조하고 예민해져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친구들과의 거리감. 비겁함.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나와 현실의 나에게서 오는 괴리감 같은 거였던 거 같다. 

3교시가 끝나도록 친구들과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4교시 종이 울리자 초조해졌다.

점심시간 때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학생 때는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고, 난 도시락을 들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혼자 책상에 도시락을 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야 왜 혼자 먹어? 일로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냐 그냥 여기서 먹으련다. 움직이기 귀찮아."

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한 번 더 불러주거나, 내 자리로 친구들이 와주길 바랬다.

"그래라 그럼."

친구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난 그렇게 혼자 밥을 먹었다. 혼밥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수업이 끝나도 혼자서 집으로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난 스스로 고립시켜나갔다.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원하는 얼굴을 내내 유지했던 나는 나의 그런 얼굴에 책임을 졌어야 했고, 그 책임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내가 받아내야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멀어지고 혼자가 된 지 몇 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점심시간이었다. 교실 뒷문이 벌컥 열리더니 "홍필구가 누구야"라고 소리치며 머리를 빡빡 깎은 덩치 좋은 녀석이 들어왔다.

 "내가 홍필군데 넌 누군데?"

라고 묻자마자 원투가 얼굴로 꽂혔다.

알고 보니 그날 나한테 맞은 그 친구의 친구였다. 둘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고, 이유도 없이 뺨을 맞은 그 친구의 복수를 위해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복싱부였다.

원투펀치를 맞은 나는 전문가의 손길임을 눈치채고 덤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뭐야 이 미친 XX는?"

강호였다. 강호는 키가 180에 전문적으로 배운 운동은 없었지만 타고난 피지컬이 좋아서 그 나이 때 애들은 감히 그에게 덤빌 엄두를 못 내던 친구였다. 말주변이 별로 없었고, 재미가 있는 친구가 아니라서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도 강호 앞에서는 어색한 웃음을 띠고 기분을 맞춰 주고 있었다. 그 강호가 잠을 멈추고 책상을 밟으면서 성큼성큼 뛰어오더니 복싱부의 얼굴을 발로 차 버렸다.

복싱부는 반격할 틈도 없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강호는 나뒹군 그 녀석의 얼굴을 발로 한번 더 차 버렸다.

복싱부는 기절했다. 누가 봐도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눈앞에서 기절한 모습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나이였다. 그런데 복싱부가 기절한 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입에 거품을 문채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강호도 얼굴은 씩씩대고 있었지만 하얗게 질린 듯한 표정이었고, 급기야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기 복도 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거기 뭐야!!"

선생님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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