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너무 많이 자라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원래 두통이 잦긴 했지만 왠지 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면 머리카락 무게가 느껴지면서 두통이 더 잦아지는 거 같았다. 착각이겠지만 또 그 이상 자라면 이제 그 무게에도 익숙해져 어느새 두통이 사라져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자라면 두피가 머리카락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각질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씻는 걸 좋아해서 하루에 샤워를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하기 때문에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서 각질이 생긴 건 아닌 거 같았다. 오히려 너무 자주 해서 그런가도 생각해봤지만 감지 못할 때 더 가려운 걸 보니 그건 아닌 거 같다. 어쨌든 씻는 건 귀찮지 않은데 머리를 정리하러 가는 건 너무나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귀를 덮을 정도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재출동 현장을 다녀왔는데 온몸에 연기 냄새가 너무 심하게 배었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드라이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연건조를 시켰는데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마르고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이 귀는 물론 눈까지 덮어 버리고 있었고, 심지어 강한 직모라 머리가 붕떠있었다. 마치 머리카락에 매직 시술을 받은 건강한 삽살개 한 마리가 주황색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직모인데 구레나룻은 또 반곱슬이라 그 모습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형편없었다.
비번날 꼭 이발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는 또 시간이 일주일 넘게 흘러갔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 마다 농담조로 이발 좀 하라고 한 마디씩 했다. 다음 날 버티고 버티다 결국 집 앞에 있는 새로 오픈한 미용실을 찾아갔다.
요즘은 거의 예약제라서 예약 없이 방문하면 퇴짜를 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히 사장님이 10분만 기다리라고 말씀해주시고는 녹차 한잔을 가져다주셨다. 녹차 한잔을 마시면서 식탁에 놓여있는 여러 모양의 머리스타일을 봤는데 이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머리스타일은 없었다. 모델들이 하고 있는 머리스타일을 내 머리에 컨트롤 X 해서 컨트롤 V 해봤더니 삶에 지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철없는 아저씨가 중년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그 마지막 밤의 끝을 부여잡고 발버둥 치고 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있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중년의 세계로 가자니 너무 어렸다. 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애매한 나이인 거 같았다. MZ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 시대가 순식간에 많이 변한 듯하다고 생각했다.
꼰대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맞는 소리도 벌벌 떨면서 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똑같은 소리를 해도 새로운 세대가 하면 용기가 있는 것이고 중년의 세대가 하면 꼰대가 되는 시대이다.
얼마 전에 식겁을 한 적이 있다.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후배에게 카톡을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다.
'누구야 다음에 보고 할 때는 한 번만 더 확인해주고 보내라. 알았지?"
정말 문구 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보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ㅋㅋㅋㅋㅋ네'
였다. 그가 보낸 잘못된 보고서 때문에 혼자 몇 시간을 끙끙 거리며 수정을 했었다. 단순히 확인 한 번이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그전부터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몇 번을 참고 참다가 고민 끝에 어렵게 보낸 메시지에 저렇게 답이 오니 순간 머릿속의 분노 혈관이 꿈틀 대긴 했지만, 침착하고 내가 화내야 될 상황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몇 번을 물어보았지만 이 상황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후배의 잘못에 대해 말을 해줘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미 화가 나 있던 상태라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수는 있으나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에게 한마디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분노해야 할 상황인 거는 맞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다음 카톡을 보냈다.
"그래도 업무 실수에 대한 문잔데 ㅋㅋㅋㅋㅋ를 붙이는 건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리고 조금 뒤 바로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은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의 무례함과 비매너의 향연이었다.
전화 통화를 끊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꼰대였는가. 후배의 저 정도 말에 화를 내는 게 꼰대라면 난 꼰대가 맞다. 직장마다 많은 것들이 생겼다. 갑질 근절 문화 등에 대한 신고가 매우 자유로워졌으며, 나도 그 문화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초임 시절에 말도 안 되는 갑질을 많이 당해봤으니 그런 문화는 근절되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악용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받거나 또는 정당한 업무지시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불응하고 갑질이라는 프레임을 씌어버리고 갑질을 당했다고 신고하는 순간 일은 커지게 된다. 그런 일이 빈번해지면 옳은 소리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모두가 하기 싫은 일은 군말 없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군말 없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혜택은 크게 없다는 것이다. 상이나 혜택은 아기새들의 먹이와 같아서 먹이를 달라고 입을 가장 크게 벌리는 아기새에게 어미새는 의 지렁이가 돌아간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보다는 자기를 내세우고 왜 나는 상을 주지 않냐고 어디에라도 불만을 토하고 하소연 하는 사람들에게 그 먹이가 돌아가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와 나눴던 대화를 우리 부서의 장에게 말했다. 위로를 받았지만 크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선배와 후배가 싸우면 불리한 건 선배다' 등의 말들만 듣고 그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어떤 무리들이 만들어내는 '꼰대'라는 이미지가 싫어서 쿨한 척, 생각이 깨어있는 척하게 되는 문화가 점차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잘 뜯어보면 어느 한 집단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의 생각에 맞게 움직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점점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흐름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어딘가 또는 무언가로부터 눌려 지내야 하는 앞날만 남은 거 같은 느낌이 된다.
이는 비단 조직 구성원들 간에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만도 아닌 거 같다. 곳곳에서 역으로 흘러가는 흐름들이 넘쳐난다.
미끄럼틀에서 역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정상적으로 계단을 타고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이 요령없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끄럼틀을 역으로 올라가서 타려는 아이들로 인해 그 순서가 꼬이고 그들이 서로 자기 먼저라고 우기면 싸움터가 돼버린다. 순식간에 질서가 없고 웃음소리가 사라지는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서 역으로 올라가는 것이 하나의 룰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원래는 계단을 타고 순서대로 타야 하는 것임을 설득하려면 장시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것을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놓은 어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정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잠겨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구급차도 마찬가지다. 일부 악용하는 사례들이 점차 늘고 있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일부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단순히 공짜로 편하게 병원에 갈 수 있는 수단으로 구급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딱히 거절할 수 있는 방법도 그리고 진위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도 사실은 없다. 그저 사람들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정적으로 다시 구급대를 최초의 취지에 맞게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 또는 몇 시간안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받을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그 업무 범위를 축소시킨다면 그 반발은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득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제때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데도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서의 꼰대가 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옳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명백하게 구급차를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옳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 등 모든 각계각층의 사회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