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여기 이스탄불이 아니라 이세카이(이세계) 인가요?
"와 진짜 동안이시네요?"
"...... 제가요?"
처음 이스탄불에서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단순히 어색함을 넘어 위화감이라고 할만했다. 한국에서는 나름 노안 부심(?) 있던 내가 동안 소리를 듣다니?
아, 물론 내가 동안이라서가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극히 평범함을 넘어 솔직하게 조금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내가 유독 터키에서 동안 소리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터키는 수염을 기르는 것에 굉장히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워낙 수염이 많이 자라는 유전적인 특성으로 인해 매번 면도를 하는 것보다는 자라는 수염을 다듬는 것이 일반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잘 다듬어진 수염을 남성적 매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터키는 정말 수염을 기른 남성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기에, 처음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풍성한 콧수염과 턱수염, 구레나룻을 기른 근육질의 남성이 나를 '아비'(Abi, 터키어로 '형'이라는 뜻)라고 부를 때에는 어색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나를 '아비'라고 부르던 친구는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초반으로 나보다 약 10살 가까이 어린 친구였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수염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남성이라면 한 번쯤 수염을 기르는 것에 대한 로망이라고 할까? 로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면도를 하다가 한 번쯤은 거울을 쓱 들여다보며(최대한 잘생겨 보이는 각도를 찾아 살펴보며) "수염이나 한번 길러볼까?"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수염에 대해서는 참 할 말도 많고, 몇 가지 에피소도 있지만 이후 천천히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다)
오랜 기간 스타트업 회사에 재직하면서 아무래도 복장이나 용모(?)에 대해 자유로운 분위기에 있었다 보니 실제로 약 2년 동안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채로 생활하기도 했다. (사진을 올릴 용기는 없어 차마 첨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소'자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이 무렵 세 번째 이스탄불을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심 '아~ 이제 동안 소리는 다 들었구나'라는 말도 안 되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이스탄불을 방문했었다.
그런데 나의 아쉬움이 무색하게도, 정성껏 공들여 기른 '소'자 수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지인으로부터 동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어로 이야기하니 '동안'이지 막상 영어로 'babyface'라는 단어를 듣게 되니 등줄기와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면서 괜스레 주변에서 비웃는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지는 않는지 조심스럽게 둘러보게 되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사람들이 붐비는 카페에서 가족 모임을 가지는데 어머니께서 "아이고, 우리 아들은 잘생긴 게 배우를 해도 정우성 배우보다 더 잘 되었을 텐데~!!"라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셨을 때 주변의 시선을 살피게 되는 것과 같은 정도의 느낌이라고 보면 비슷할 것 같다.
수염도 길렀는데도 동안으로 보이냐는 질문에 친구들은 그냥 수염이 있고 없고의 문제나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분위기 자체가 더 어려 보이고 젋어보인다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 애석하게도 저에게는 인류/문화 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닌 관계로 철저히 경험에 의거해 내가 이스탄불에서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대해 너른 이해 바랍니다 ㅎㅎㅎ)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같은 나이에 짊어지는 삶의 무게가 다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스탄불에서 비슷한 나이의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면서 느낀 점은 더 큰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시기를 한국의 20대 30대보다 훨씬 빠르게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찾아오는 삶의 단계가 한 단계씩 더 빠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내 주변에서는 30대 중반에 접어든 몇몇 선배들이나 가정을 꾸린 정도였지만, 이스탄불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까지 몇 명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이스탄불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지인들 사이에서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 가정을 꾸렸거나 아이가 있는 상태였다. 너는 결혼을 안 했으니 나이는 네가 더 많지만 우리가 형이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눈가에 아련하게 묻어있던 부러움의 친구들의 시선을 아직 기억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1990년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길거리 인터뷰와 같은 영상이었는데 이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는 지금의 우리와 같은 20대, 30대의 나이이지만 마치 지금의 40대나 50대는 되어 보이는 것처럼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들의 말투와 분위기, 옷차림 등이었다.
분명히 인터뷰 영상에 나오는 나이는 우리와 같은 20대, 30대였지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확실한 것은 단순한 패션 스타일, 유행 등에서 오는 차이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해당 영상을 봤을 때 댓글 창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던 댓글도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 짊어졌던 삶의 무게와 지금의 20대, 30대가 겪는 삶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터키의 20대와 30대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20대, 30대보다 조금 더 일찍 더 무거운 책임과 무게를 짊어진 것으로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안이시네요"라는 말이 단순히 어려 보인다기보다는 아직까지는 내가 짊어진 인생의 짐이 홀가분해 보인다는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만 해도 30대가 된다는 것은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어보면 이미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청춘에 대해 고민하는 가사이지 않은가
반면에 지금의 서른 살은 이제 사회 초년생으로 자리 잡아 나가거나 취업을 준비하기도 하는 나 요즘의 30대는 이제야 사회 초년생으로 처음 세상에 발을 딛는 나이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은 꾸린 지 2년째에 접어들고, 나이도 서른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어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는 훌쩍 들었지만 어쩌면 아직까지도 '어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막중한 책임감을 온전히 짊어지기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저 소파 옆 끄트머리에 앉아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자격증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틈틈이 우리 앞에 놓인 간식거리를 탐내는 고양이 '마노'를 보며 내일은 조금 더 성숙한 어른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뭐, 사람이 원래 갑자기 철들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조금씩이라도 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스스로 기대해 본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