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기준, 친구의 정의

by 춘동

친구의 기준, 관계의 무게

추석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본가를 찾았다. 우리 지역은 특성상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친구들과 졸업하는 일이 흔하다.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받거나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보통은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친구들을 따로 만나지 않지만, 이번 추석에는 예외였다.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받아 새롭게 카페를 오픈한 성호, 그리고 어릴 적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영애. 그렇게 셋이 만나기로 했다.


성호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부모님이 작은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우리는 종종 홍보나 관리를 도와야 한다는 점. 다만 나는 부모님의 사업을 잇지 않았지만, 성호는 법인의 대표로 묵묵하게 일하고 있다.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다.


어릴 때부터 성호는 나무늘보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누구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특유의 기운이 있다. 졸업 후 거의 8년 만에 만났지만, 마치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 매번 가겠다고 다짐만 하던 만남이었지만,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내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란 무엇일까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친하다는 기준, 그리고 친구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친구’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싶었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혹여 상대가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면? 친하다고 믿었던 관계가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면? 그런 생각들이 내 마음을 지배해 왔다.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내자, 성호가 말했다.


"친구의 기준이 뭐냐고? 예를 들어 ‘나 취업했어’, ‘나 이사했어’ 같은 큰 변화가 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뭘 해줘야 하지?’ 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친구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친하다’의 기준은?


"서로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상대가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만약 상대도 똑같이 뇌를 비우고 나와 함께 있어 줄 수 있다면, 그게 친하다는 거 아닐까?"


성호의 말이 마음 깊숙이 와닿았다. 나는 늘 친구의 정의를 고민했고, 친구가 없다고 느꼈다. 스스로를 감추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며 살아왔다. 내 행동과 라이프스타일이 주변에서 이야기될 때면 불편했고, 그래서 관계를 최소화하려 했다. 나는 친구를 곁에 둘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스스로 세운 벽에 스스로 갇힌 기분이었다.


그런데 성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안에서 뭔가 유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 ‘친하다’에 대한 정의가 이해되었고, 문득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닐까?"


관계에서 오는 서운함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떠올랐다.


"내가 주었을 때,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서운한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가 한 배려가 상대에게서 되돌아오지 않을 때, 서운함을 느낀다. 마치 나만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고, 나만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어쩌면 그래서 사람을 더 곁에 두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관계를 맺는 것보다, 관계가 깨지는 것이 더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록 지금은 관계에서 오는 상처가 두려워 외면하는 단계일지라도, 언젠가는 그런 감정에 동요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고 싶다.


누군가와의 인연이 내 기대만큼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큰 타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성장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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