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un 01. 2024

흐르는 불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리는 다시 위와 아래로 파동이 되어 흐릅니다. 그 모습이 파도 같기도 하고 가시 같기도 하고, 찢어진 종이 같기도 합니다. 심장은 할 일이 아직 남았다는 듯 규칙적으로 위와 아래를 오가며 아직 생명이 남아 있음을 각인시켜 줍니다. 아버지의 심장은 여전히 삶의 궤적을 돌고 싶은 것이지요. 나는 심장 뛰는 소리를 듣다가 타닥타닥 타는 장작불 소리를 듣습니다. 뜨거운 혀를 날름거리며 장작을 다 태우다가 마침내 장작을 푹석 땅바닥에 내 팽개친 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그 불 말입니다. 다 꺼졌다고 돌아설 때에도 속불이 다시 살아나 불을 일으키는 그 불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로 불리는 남자는 장작불처럼 죽음 앞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그라질 대로 사그라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보여도 아버지는 여전히 불이 되어 살아납니다.

   마침내 불은 자신의 모든 몸을 허공에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몸은 재가 되어 지상에 남는다고 할지라도 영혼은 하늘로 올라갈 것을 남자는 믿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죽음 앞에서 기도하면서 올린 조용하고도 경건한 성호를 떠올립니다. 아버지는 거추장스러운 몸을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것일까요. 문득, 우리의 몸은 구속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몸은 우리 자신이기도 하지만 속박하고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니까요. 인간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바다 깊이와 창공 높이 그리고 꿈꾸는 도시를 모두 갈 수는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과 얼마나 대조적인지요. 그럼에도 우리의 영혼은 몸에 의탁하고 몸은 영혼을 품고 이 지상에서 자유를 꿈꿉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나눈 추억을 가만가만 나누어 봅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날에 아버지는 교과서를 가져오게 해서 책가우를 싸 주셨지요. 달력으로 된 하얀 책가우, 그 빳빳한 느낌이 좋았어요. 아버지는 또 연필을 가져오게 해서 칼로 사각사각 깎았지요.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지금도 귓가에서 울린답니다. 제가 형들과 싸운 날, 아버지는 내 종아리를 매로 때리셨지요. 그때 아픔을 찾으려고 입을 앙다물었지만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지요. 안티프라민 냄새였어요. 상처에 바르는 안티프라민을 내 종아리에 당신이 바르고 계셨지요. 그 손길 때문이었는지 나는 눈물이 나왔지요. 숨길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었지요.

  중학생이 되었던 때였던가요.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지요. 저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요.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주워들은 제일 큰 말을 한 것이지요. 대통령도 알고 있었으나 대통령은 너무 큰 말이어서 감히 입밖에 낼 수 없었지요. 그때 저를 보고 지었던 아버지의 웃음을 기억합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셨지요. 함박눈이 올 때처럼 나는 환하고 충만해져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지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당신은 어머니와 크게 싸우셨지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듯 외치고 있었지요. 물건을 던지고 깨지는 소리도 들렸지요. 당신이 불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한번 불이 일면 활활 타오르는 불이 당신 안에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싸움은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당신은 어머니께 대신 분풀이를 하셨던 게지요. 어디로도 빠져나갈 불구멍을 찾지 못한 불이었어요. 저는 그 불이 무서워 숨고만 싶었지요.

  결혼하고 얼마 뒤에 찾아간 고향 집에서 당신의 굽은 등을 보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놀랐습니다. 영원히 강인한 몸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실 것 같던 당신의 등이 점점 왜소해지는 것을 느꼈을 때 당혹감을 뭘로 표현할지 몰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당신의 불은 여전히 이글거릴 때여서 나는 당신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당신은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당신의 몸을 흙에게 돌려줄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싱싱했던 물기가 빠진 당신의 몸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기를 떨어내는 단풍잎처럼 당신의 몸도 떨어지기 위해 물들어가고 있었지요. 그때였을 것입니다. 당신이 바람이 되고 싶었었다는 사실을. 어디든지 날아가고 싶었던 꿈 많은 소년이었다는 사실을, 몇 장 안 되는 어릴 적 일기장에서 바람이 되어 날아가고 싶은 소년을 보았습니다. 어디든 가고 싶었던 당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덜컥 가장의 짐을 짊어지고 말았지요. 그래요, 몰랐습니다. 당신도 저처럼 꿈이 있었던 어린 아이였다는 사실을.

  이제, 당신은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심장 박동기는 여전히 그 사실을 외면하게 하지만 죽음과 싸우는 당신의 호흡은 거칠기만 합니다. 입으로 무엇이라 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들리는 것은 고통의 언어입니다. 죽음은 당신이 그토록 지녀왔던 몸의 구속에 벗어날 시간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오직 순결한 영혼만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상의 것은 흙 한 줌도 가지고 하늘로 오를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상에서 지녔던 어떤 것도 하늘로는 오르지 못할 테지요. 나를 보는 당신의 눈은 총기가 서렸다가 다시 까무룩 잠깁니다. 제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한번 웃어주시더니 다시 저 심해로 침잠하는 듯 힘을 잃고 맙니다. 

  불은 이제 자신의 영혼을 공기에게 내어주고 재가 된 몸은 흙에게 돌려주고 평생을 품어왔던 물기는 하나둘 털어내 가볍고 마른 영혼이 될 것입니다. 나는 힘겨워하는 싸움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싸움은 영웅의 싸움보다 더 영웅적이고 가장 치열한 싸움보다 더 치열한 싸움입니다. 태고부터 인간이 싸워왔던 가장 경건한 싸움이자 고통이자 죽음 앞에 홀로 서는 지독한 외로움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손을 잡아봅니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곳이 결코 검은 절망이 드리운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온기는 내게 흘러들어 다시 어디론가 흘러가겠지요. 나는 당신의 온기를 옮기는 전령입니다. 당신이 이 지상에 남겼던 온기를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겠습니다. 당신의 온기로 인해 세상은 다시 봄을 맞이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겠지요.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아버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가는 당신을 보고 있으면 말입니다. 아버지, 왜 이리 서글프고 외롭고 안타까운지요. 왜 자꾸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지요, 왜 자꾸 당신의 얼굴에 볼을 비비고 싶은지요, 왜 자꾸 한 줌 남아 온기가 서러운지요, 심장 박동기는 왜 이리 가슴을 치며 울리는지요, 저는 정말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해 저는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아버지. 이 막막한 시간에도 언젠가는 다시 아버지를 만날 것이란 사실을 압니다. 어디에 있든 당신이 공기로 찾아와 제 호흡으로 사실 것을 이제는 압니다. 산소가 되어 나를 살아가게 하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 또한 나의 생을 죽음 앞까지 밀고 나갈 용기를 낼 것을 알고야 맙니다. 알기에 나는 당신과 같이 있습니다.     

  어둠이 별과 함께 있듯이 호흡이 나와 함께 있듯이 당신은 불이 되어 나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남자의 날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