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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31. 2024

추억수첩 4

남자의 날개


남자의 날개


  남자는 링거줄을 모두 빼버린다. 거부함으로 자신이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는 듯. 조직 사회에 몸을 담지 않은 남자는 길들여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정신이 돌아오면 돌아오는 대로 정신이 없으면 정신이 없는 대로 이 남자는 링거줄을 빼고 자신을 묶고 있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본성을 지키고 싶다는 듯 남자는 링거줄에 저항하고 자신의 손을 묶은 장갑에 저항하고 끝없이 찾아오는 고통에 저항한다.

  나는 남자의 저항을 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손을 묶은 장갑을 풀면 남자는 산소호흡기를 풀 것이고 산소호흡기를 풀면 이 남자는 영영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이다. 나는 남자가 새가 되어 날아가지 못하도록 팔과 다리와 영혼을 묶어놓고 있다. 아직은 날아갈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날고 싶은지 모든 힘이 빠져나간 뒤에도 팔을 들어 올린다. 팔은 날개가 되어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땅에 떨어진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웃는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우리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곧 무엇엔가 붙들린 듯 다시 링거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숨은 열 중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폐의 기능으로 들숨과 날숨을 쉰다. 십 분의 일로 온몸을 지탱해야 하지만 승부는 이미 결정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누구도 1이라는 호흡으로 10을 견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의 저항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조직에 깃들기를 거부했고(그럴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농사를 지으면서 저항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수 있다. 타는 가뭄에 쓰러져가는 농작물도 마지막까지 생명을 놓지 않고 저항한다. 그리고 생수와 같은 단비가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세운다. 생명은 저항의 정신이다. 저항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성을 지키고 살아남는다.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면 더 이상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때가 되면 이 남자가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을 안다. 저항의 역사를 다 끝내는 날 이 남자는, 저항으로 구원을 얻은 이 남자는, 새가 되어 하늘로 오를 것이다. 마지막까지 죽음과 맞써 대항하였느냐고 신이 이 남자에게 묻는다면 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신이여, 이 남자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새의 영혼을 이 남자에게 허락하여 주소서. 라고 말할 것이다.

  하루를 온전히 갉아대는 숨소리와 씨름하던 이 남자에게, 온전한 저항으로 몸부림치는 이 남자를 본다. 이 가혹한 형벌을 견뎌내기 위해 이 남자는 자신의 정신을 옷을 벗듯 하나둘 벗어버리고 오직 죽음과 싸울 정신 몇 가닥만 남겨두었는가. 맨정신으로는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할 것을 알기에 신 또한 남자가 자신의 정신을 희석하는 것을 허락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 참혹한 저항의 현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몸부림치는 남자에게 수면제가 투여된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무언의 사형집행인처럼 수면제는 남자의 혈관으로 들어가 꿈틀대는 저항을 하나씩 진정시키고 영면과 같은 잠으로 빠져들게 한다. 남자는, 엿새 동안이나 고통과 싸운 이 남자는 비로소, 그리고 마침내 휴전에 든 병사처럼 무기를 내려놓는다. 나는 남자의 곁에서 남자의 손을 잡는다. 남자는 이내 깊은 잠이 든다.

  귀를 갉아대는 호흡 속에서 남자는 눈을 감고 잠을 잔다. 그 잠이 주는 평화로움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싸움이 끝난 듯, 이제 구원을 얻으려는 듯, 남자의 얼굴에 핏기가 돈다. 그동안 미뤄둔 잠을 이제야 실컷 잘 수 있다는 듯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남자의 몸은 평화롭다.

  베드로인 세례명으로 하늘을 향해 성호를 그었던 이 남자는 이제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잠들었지만, 그의 영혼으로 이어지는 귀는 마지막까지 잠들지 않음으로 신부님의 말씀은 그의 구원으로 이어지리라. 나는 이 남자의 귀에 대고 ‘사랑해요, 아버지’를 속삭였다. 심장 박동기가 움직인다. 이 남자는 새가 되어 날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경건하게 바라본다. 

  이 남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이다. 견디고 기다리고 다시 견디고 기다리고 다시 견디고 기다리는 일로 이 지상에서의 일을 완성하고 있다. 저항하는 일은 부딪치고 깨지고 싸우고 날을 세우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다. 저항하는 일은 부딪치려는 마음을 견뎌 순해지게 하는 일이고 깨지고 싸우려는 마음을 견뎌 참고 화해하는 일이고 날을 세우는 마음을 견뎌 정을 돈독하게 하는 일이었다.

  잠은 그에게 편안과 함께 핏기를 돌려준다. 마른 그의 얼굴에 잘 익은 사과처럼 빛이 돈다. 고통에 잠들지 못한 그의 영혼이 비로소 안식의 처소에 들었는지 몸이 따뜻하다. 나는 이 남자의 잠을 곁에서 들여다본다. 거친 숨소리가 마치 날갯짓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얼마나 멀리 날아가시려고 이리 힘겨운 연습을 하시는 것일까.

  새의 영혼을 가두었던 몸의 빗장을 풀고 이 남자는 날아갈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창문으로 봄의 저물녘이 아득하게 드리워져 있다. 남자가 무슨 꿈을 꾸는지 팔을 살짝 들어 올린다. 마취의 잠 속에서 남자는 새처럼 비상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저 검은 숲으로 이 남자의 영혼이 훌쩍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남자의 손을 붙든다.

  남자는 저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남자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아직 견디는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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