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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31. 2024

추억수첩 3

뒷좌석의 무게




   옷가지를 넣은 가방과 무릎 담요를 챙겨 아버지가 앉아 계시는 뒷좌석에 싣고 전남요양 완화병원으로 향한다. 평소와 다른 뒷좌석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핸들을 잡은 손에서 진땀이 올라왔다. 남편에서 화순으로 이어진 2차선 국도를 탔다. 뒷자리에서 밖을 내다보시던 아버지가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셨는지 문득, 옛일을 꺼내신다.     

  “니 할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그리 가시니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었지. 이곳까지 나무를 하러 왔으니까. 산 주인이 올까 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라. 내빼다시피 리어카를 몰고 오는디, 나도 니 삼촌들도 기진맥진이 되어갔고 죽어라 이 고개를 넘었제. 걸리면 죽도록 맞았응께.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던지, 니 할아버지만 살아계셨어도…. 당해 보지 않고는 몰라야, 당해 보지 않고는…….”     

  그 길을 따라간다. 이번 길이 마지막 길이 되리라는 것을 뒷좌석에 앉으신 아버지도 알고 앞좌석에 앉은 어머니도 알고 운전하는 나도 알지만 아무도 ‘마지막’이란 말을 꺼내지 않는다. 마지막이란 말은 왠지 불길하다. 끝을 향해 있는, 돌아오지 않는, 생의 막막한 여정 같다. 

  어머니는 말이 없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일자로 꾹 다문 입을 고수하고 있다. 화순을 거의 다 지날 무렵, 무슨 말을 할 듯 나를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돌리신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이 무거운 침묵에서 벗어나면 좋을 텐데 어머니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좌석의 무게를 견디고 계셨다. 참지 못한 것은 나였다.      

   “아버지, 전에 작은아버지한테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얼마나 맞았던지 집에 가지도 못하고 우셨다고….”

  말을 더 이을 수가 없다. 말처럼 빈곤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이 무거운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멍한 눈빛이 되어 먹빛이 짙어진 밖을 내다보신다. 저승길이 이처럼 구불거릴까. 길은 산에 내어준 얼마의 여분을 밑천으로 삼아 생처럼 뻗어나가다가 어느 산 밑자락에서 죽음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있다. 이 길이 마치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고개 같다. 아버지는 잠이 오시는 듯 눈을 감았다가도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은 뜨시더니 낯선 곳에 와 계신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치 몽환의 세계에 온 듯 아버지의 눈은 산 너머를 헤맨다. 해변의 모래밭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눈이라면 그 순간에 언뜻 보았던 아버지의 눈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삶의 여정에서 만났던 기억들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 한순간 몰려온 파도에 무너지는 순간, 파도를 막으려 발버둥 치는 어린아이의 애타는 눈빛이기도 하고, 무너진 모래성을 바라보며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고 돌아는 눈빛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아쉬워 뒤돌아보는 눈빛이기도 하였다면 아버지의 그 눈이 설명될까. 멀리 완화병원이 보였다.     

  원장 의사가 오기 전, 간호사는 아버지의 서류를 확인하고 암의 전력과 현재 상태를 묻는다. 나는 아버지의 상태를 말하면서 마음 한 곳이 시려온다. 더 좋은 선택은 없었을까. 그때 한 번 더 수술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더 나아졌지 않았을까.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몇 번의 망설임. 수술했다면 조금은 더 시간을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시린 후회들이 밀려왔다. 

  간호사가 건넨 자료를 살펴본 원장 의사는 아버지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방법만 달리할 뿐 모두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한 달 안으로 맞이하게 될 죽음이라는 결과는 피해갈 수 없었다. 나는 고통이 없는 방법으로 해달라고 말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눈물이 났다.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지 회한과 후회로 인한 눈물이 일어났다. 간호사와 의사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어머니는 화장실에 돌아와 멍하게 서 있는 내 옆으로 와서 손을 잡으시더니 꾹 다문 입을 여셨다.     

  “정신 차려야 쓴다.”     

  원장 의사의 설명을 마저 듣고 보호자란에 서명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병실로 이동했다. 간호사가 아버지의 팔뚝에 주삿바늘을 꽃는다. 아버지의 마른 몸은 거부할 모든 힘을 뺏긴 짐승처럼 자신의 혈관을 간호사의 주삿바늘에 내어주고 한 마리 어린 짐승처럼 몸을 웅크렸다. 나는 다가가 아버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약간의 열이 있는 이마와 머리칼이 내 손에서 떨었다. 간호사가 돌아가자 어머니는 잠이 드신 아버지를 보면서 한숨을 쉬셨다.     

  “니 아버지가 이제는 꼭 죽을 것만 같아야. 죽는 사람은 몸서리를 친다고 안그냐. 니 아버지가 그랬단 말이다.”     

   ‘죽음’이란 말을 입에서 뱉기가 두려웠다. 아버지가 듣고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내 죽음을 말하고 있다면 나는 어떤 심정이 될까.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죽음의 질감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심연의 두려움이 드리운 질감이었다.

  병실 천정을 향한 채 잠든 아버지는 생명의 기척이 없는 마른 삭정이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저 마른 살갗, 저 마른 눈빛, 저 마른 눈물, 저 마른 사내가 침대에 누워 마른 혈관을 주삿바늘에 내어주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다시 오기 위해 돌아가야 했다. 면회 방법과 시간을 안내받고 꾹 다문 입으로 모든 시간을 참아내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속울음은 얼마나 깊은 우물일까. 나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병원에서는 필요 없게 된 담요와 이불을 챙겨 뒷좌석에 실었다. 아버지의 무게와 엇비슷한 무게의 보따리가 내 손에 들렸다. 한 생의 무게가 이토록 가벼운 무게였던가. 팔십 생을 자식을 위해 땅을 갈고 뒤엎었던 한 사내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웠던가. 한때는 평사리 마을의 장사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사내는 옷가지가 든 보따리보다 가벼워져 저승으로 넘어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하다. 언젠가는 우리의 생도 저승으로 넘어가야 하겠지만, 밀려오는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은 구불거리는 길처럼 마음을 헤집는다. 보따리는 그냥 보따리의 무게가 아니어서, 담요와 이불만의 무게가 아니어서, 한 남자의 기나긴 시간이 지나온 시간의 무게여서, 섣불리 평을 하거나 재단할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뒷좌석의 문을 닫는다. 나는 슬픔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려움만도 아닌 아릿한 감정의 무게를 느끼며 차를 몰았다.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형제들과 나무를 싣고 리어카를 밀었던 길을 타고 내려온다. 생각해 보니, 작은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보다 어느 여름, 점방에서 막걸리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기억에서 올라왔다.      

  “니들은 모른다. 그때 나무하다 걸려서 나무막대기로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니 작은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고, 그놈의 영감탱이가 우리 형제를 얼마나 모질게 때렸는지 모른다. 한 번만 더 오면 죽여버린다고, 그랬어도 달리 방법이 있간디. 그렇게 맞고도 또 갔제, 그때는 숫제 죽음을 각오하고 갔어야. 차라리 죽여부시오, 하고 갔던 길이제.” 

   흐르지 못한 눈물이 눈앞에서 안개처럼 흐려지다가 아픔으로 패인 자리에서 피잉 돌았다. 평생을 살아온 집을 마지막으로 나서며 잠시 뒤를 돌아보시던 아버지, 병원 침대에서 얇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가만히 성호를 그으시던 아버지, 고향 집을 가슴에 당기듯 기도하는 그 눈빛의 무게을 생각하고 나는 고인 눈물 한줄기를 떠나보낸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벗어나 평탄한 길에 들어서자 가로수는 연둣빛 잎들을 밀어 올린다. 창문을 열자 새들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아버지는 얼마나 이 초록의 지상에서 버티실까. 갈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말이 없다. 그 말 없음이 나는 더 가슴이 아프다. 꾹 다문 입술로 앞좌석의 무게를 감당하고 계신 어머니. 아버지의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가슴 한쪽이 무너졌을 어머니는 ‘말 없음’으로 모든 말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방에 들어가신 어머니가 성모님 상 앞에 엎드린다. 나는 문을 닫고 나와 여동생에게 전화로 어머니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알 수 없는 공허와 허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한수제로 차를 몰았다. 한수제를 지나 금성산으로 오르는 길. 차를 주차하고 길을 따라 걷는다. 제법 어둑해진 길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을 쓸면서 간다. 어머니의 시린 침묵도, 보내야 하는, 보낼 수밖에 없는 저 가볍고 가여운 아버지의 몸도, 그 애탐과 뜨거운 눈시울도 바람에 실어 떠나보내고 싶었다.

   바람을 맞으며 어둠과 적막이 차지한 등산로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나 말고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무 의자에 앉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봤다.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떠날 준비도 없이 가는 생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를 다독여도 길은 여전히 어둡다. 멀리 보이는 가로등 불빛을 위안 삼아 다시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의 무게처럼 가벼운 배낭을 메고 더듬더듬 집으로 가는 길, 기억 속에서 잠자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니 아버지가 그러더라. 그때 산 주인한테 맞을 줄 알면서도 억척스럽게 나무하러 간 이유가 단지 가난만은 아니었다고. 내가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나중에 자식들이 이 가난을 물려받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가난의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그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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