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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31. 2024

추억수첩 2

우로보르스의 시간

   선망 증세였다. 꽂아놓은 링거줄을 빼버리고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간호사를 불렀다. 피가 묻은 아버지의 침대보와 환자복이 갈아입혀졌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신다. 마치 천진한 어린아이와도 같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눈이 흐릿해진다. 의사의 말로는 아버지의 지금 상태는 파도타기라고 한다.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져 임종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올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아버지의 이마와 머리에 손을 얹는다. 아버지는 평생 흙은 만지며 사셨으니 흙의 기운으로 지금을 버티고 계실 것이다. 대지의 무한한 생명력을 한 몸에 받은 아버지는 힘이 장사였다. 흙을 만지며 파와 당근, 배추, 고추 농사를 쉬지 않고 지으셨고, 시간이 나는 대로 농산물 시장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셨다. 자식 농사도 당신의 농사만큼이나 좋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당신도 자식 농사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셨던지 나중에 손자들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하셨다. 그것이 순리라는 듯이.

   산소호흡기를 낀 채 입으로 호흡하시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어머니인 대지가 아버지를 부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소리가 알려준다. 숨을 쉬시다가 한두 번 오한이 드신 몸을 떠신다. 생명을 준 대지는 다시 아버지의 생명을 거두어 가려고 아버지를 준비시키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된다. ‘반드시’란 말속에는 절대적인 숙명의 의미가 들어 있다. 아버지 또한 절대적인 섭리 안에 들어 있다. 뼈를 감싸고 있는 마른 살가죽이 죽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서서히 말라가는 일이 죽음일 것이다.

   나는 대지의 다른 음성을 듣는다.  생명을 거둬들인 대지는 새로운 생명을 지상을 내놓는다. 아버지의 몸과 영혼을 삼킨 대지는 아버지를 하나하나 분해해 흙으로 만들 것이고 어느 때고 그 흙은 생명을 키워내는 거름이 될 것이다. 생명의 순환이기도 한 이러한 섭리는 ‘반드시’ 일어나고,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땅에 들어가는 일은 순환에 순응하는 일이다. 그 시간을 아버지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맞이하고 있다. 땅에서 받은 장기가 하나하나 제 기능을 잃어가는 일은 땅에 들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지 않을까. 대지는 ‘자궁’이었으니 자궁에서 태어나는 온갖 식물과 동물들의 삶을 살찌웠으니 대지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공급해주는 어머니가 아니던가. 풍만한 젖가슴으로 아기에서 젖을 물리듯 대지는 생명을 자라게 하고 풍족하게 하지 않던가. 시간이 지나 때가 되면 대지는 자신이 낳은 것을 거둬들인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생명의 숨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아버지 또한 대지의 부름에 답하고 있다. 주었으니 거둬들이는 것이다. 아버지의 숨소리는 회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입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입을 바라보며 태고부터 시작된 순환의 의미를 생각한다.

   아버지 사랑해요,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버지가 별보다 더 밝게 웃으신다. 내 손을 잡는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 힘이 미약에 눈물이 난다. 아버지의 눈을 보며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온다. 섭리를 어찌할 수 없지만, 그 섭리조차 거스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다른 이들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폭군이 아니던가.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간 폭군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생명과 가능성을 지상에 내놓는 수레바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시간을 주고 시간을 빼앗으며 수레바퀴가 굴러간다. 돌고 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든 하늘의 뱀, 우로보로스가 된다. 아버지의 시간은 이제 대지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 꼬리를 물고 도는 시간의 순환 속에 들어갈 것이다. 그 아득한 시간을 돌고 돌아 흙이 된 아버지는 다시 지상으로 돌아올 것이니 대지와 시간은 함께 생명을 돌리고 함께 거둬들이기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의 몸은 이제 겨울 담쟁이 잎처럼 탄력을 잃고 여기저기 홍점이 생겨난다. 이제 가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의사는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나는 견디는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안다. 생명으로 왔으니 마지막 소진의 시간까지 생명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대지 위에서 혈육으로 만난 이들과 맺은 사랑으로 마지막까지 섭리에 매달려 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후회와 미련과 아쉬움이 없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붙잡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이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데려올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말을 어긴 오르페우스의 마음이나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도승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며느리이의 마음이 모두 같을 마음일 것이다. 인간이기에 그리한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인간이기에 후회와 미련이 남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른 뼈들을 어루만진다.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로 나는 매번 뒤를 돌아볼 것을 안다. 이제 대지의 신이, 우로보로스의 시간이 부르면 아버지는 숨을 대지에게 돌려주고 땅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가야 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야함에도 나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깊어가는 밤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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