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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10. 2024

점묘

 

  점묘는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세밀함과 정교함을 생명으로 한다. 하나의 점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세부적인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체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없게 된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점들이 모여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원자도 양성자와 음전자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속에서도 궤도에 따른 운행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놀랍고 신비하다. 그러니까 원자 또한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도 어제와 같은 몸이라도 생각하지만 이 순간도 우리 몸에서 피가 순환하지 않은가. 


   시인들의 시는 수묵화보다는 점묘화에 더 가깝다. 시어의 점을 찍어 전체의 이미지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눈도 바람도 강도 바다도 모두 점으로 구현된다. 그럼, 보이지 않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이 가능할까. 감정은 점으로 가능할까. 감정은 다른 사물에 혹은 상황에 빗대어 비유로 알레그리로 표현이 가능하다. 감정은 보이지 않은 것이니 보이지 않는 것에 점으로 찍을 수는 없어서 다른 형태로 치환한 다음에 그 상을 구현한다. 하나의 점이 다른 점과 조화를 이루어나가면 전체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문득 김 시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김 시인은 비구니가 되기 위해 절에 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방을 매고 절 주변을 배회하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다고 한다. 하룻밤 재워줄 수 있냐는 말에 주지 스님에게 여쭈어 ‘기도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했다고 한다. 찾아간 자리에서 스님은 몇 마디 물어보지 않고 흔쾌히 방을 내주었는데 그 방에는 먼저 와 계신 손님들이 있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는 아주머니와 잠시 일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와 있는 여자분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뜻하지 않은 인연이 어쩌면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상이 아닐까. 점으로 만났지만 점이 어울러져 한 폭의 추억이 된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곳에서 인연이 되어 법정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법정 스님은 당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한다. 당시 이슈가 되고 있는 전교조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나는 김 시인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은 연습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점이다. 그 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인생의 이미지가 달라질 것이니 함부로 점을 찍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시도 이야기도 인생도 점으로 찍히는 한 편의 서사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점이 되는 시간들을 꿈꾼다. 나의 점을 찍기 위에서는 당신이 있어야 하고 당신의 점을 찍기 위해서는 나라는 점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한 편의 인생을 구성하는 점이다. 나무도 바람도 강물도 바다도 모두가 점이다. 


  오늘 나의 점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붓끝을 정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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