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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16. 2024

추억수첩 19

구 버드나무집

               

   이렇게 허름하고 누추한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에 예약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오고 있을 분들 생각을 하니 장소를 변경할 수 없었다. 오래된 집이었다. 한켠에는 토막낸 나무가 쌓여 있고 왠지 정리가 되지 않은 어수선한 마당과 귀퉁이에 묶여 있는 털이 복숭복숭한 어미 개 다섯 마리와 새끼로 보이는 강아지 네 마리,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는 수염이 하얀 고양이 한 마리까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음식점답게 담에는 넝쿨이 제멋대로 뻗어 있고 듬성듬성 놓인 화분과 거미줄이 길목을 막고 있는 화단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금목서로 보이는 나무에 걸어놓은 흙 묻은 장갑과 녹슨 기구들이 넉넉하지 않은 이곳의 형편을 말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니 인상이 후덕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온다. 예약하셨는가요? 툭, 던져오는 질문에 대답이 튀어나간다. 네 다섯 시 백숙입니다. 말해놓고도 웃음이 나온다. 다섯시 백숙이라니. 내 존재가 이렇게 몇 시로 명명되기는 처음이었다. 목적에 맞는 답이라고는 하지만 나를 시간이나 음식에 빗대어 말하는 일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주머니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궁이에 불을 땐 모양으로 공기가 후끈거렸다. 혼자 열기를 참고 있기 보다는 밖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이곳이 오래된 맛집이라는 소문이 사실인 듯 벽에는 손님들의 손글씨가 음식맛을 보증하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잠시 후에 다른 예약 손님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문으로 들어선다. 우리, 5시 토끼요. 음식 다 됐소? 아저씨가 이제 잡으러 갔어요. 인자? 금방 돼요. 말이 짧다. 단골인 모양으로 스스럼 없이 말을 주고 받는다. 5시 토끼와 5시 백숙이라, 나는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이곳이 익숙한 듯 강아지들을 보러 가고 남자는 다른 버드나무집으로 간 일행의 전화를 받는다. 아따, 거기는 신 버드나무집이고 여기는 구 버드나무집이라니까. 그래, 맞어. 주유소 뒤에 있는, 고개 넘어가기 전에 말이여, 얼릉 와. 남자의 거침없는 말이 고향집 아재 같아서 뒤끝이 구수하다. 버드나무집이 다른 곳에서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구 버드나무집에 와 있고 나는 생판 모르는 구 버드나무집에 예약을 하고 손님을 초대한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털을 말끔히 벗겨낸 토끼 두 마리를 들고 나타난다. 털이 없는 토끼의 몸은 생각보다 작고 왜소해 보였다. 생기가 빠져나간 몸은 정지의 상태로 멈춰 있다. 집에서 기르던 반려견도 토끼처럼 두 발을 앞으로 쭉 내뻗은 채 죽어 있었다. 생기 없는 몸이 애잔해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에 넣어 산에 묻어 주었다. 죽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흙으로 바로 돌아가는 죽음도 있지만 토끼처럼 부위별로 잘려서 탕 속으로 들어가 끓여진 후 인간의 몸으로 들어갈 죽음도 있다. 


     생각하면 존재하는 입들은 모두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이가 필요하다. 상위 포식자는 하위 포식자를 먹어야 한다. 음식이란 이름으로 포장이 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와 지구별에서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날로 먹든 끓여서 먹든 먹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먹고 에너지를 얻어야 살아간다.

   너무 생각이 나갔나 싶었을 때 K선생님과 M 선생님이 보인다. 다행히 식당을 잘 찾아온 것이다. 상에 차려진 백숙은 푸짐했다. 살은 부드럽고 다섯 가지 약초가 들어간 국물이 속을 풀어주었다. 역시 맛집이라는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한 방에 자리를 잡은 토끼 팀과 다른 백숙 팀들이 음식을 먹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 사이로  술을 따르는 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토끼 팀은 토목 작업을 하고 온 모양으로 먼지를 턴다고 털었지만 작업복에서 풍겨오는 페인트 자국과 먼지, 얼룩 등이 꽤나 힘든 일을 마치고 온 사실을 말해 주었다. 백숙 팀은 가족 모임으로 보였다. 아버지와 딸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내 앞에 앉은 K와 M은 이런 시골의 분위기와는 어울리는 앉는 양장차림이었다. 평소에도 고급스럽게 옷을 입었다, K는 시골이 고향이어서 어렸을 때 농삿일에 이골이 나 시집갈 때 신랑이 어떤 사람인지 살폈다고 한다. 시골 사람이면 시집을 안 가겠다고 각오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으니 시골이 좋아진다고 했다. M은 도시에서만 살아서 시골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했다. 함평에 아궁이가 있는 집을 짓고 싶어 지금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룻밤을 자도 시골에서 자고 싶다고 했다. 


   K의 목소리는 조금 투박하게 들리는데 비해 M의 목소리는 톤이 높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잘 써지지 않는다는 M의 말에 K가 일단 시를 쓰고 사람들 앞에 보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많이 얻어 맞아봐야 피할 줄도 알고 펀지를 날릴 줄도 안다. 나는 M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내 안에 상처가 있다면 잎이 찢긴 꽃잎으로 비유해 보는 거지요. 시는 결국 인간을 비유하고 상징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모든 사물들은 인간으로 비유가 가능해요. 그런 비유가 일관성을 띠면 상징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길도 인간이고 꽃도 인간이고 구름도 인간이지요. 그리움과 분노와 사랑과 아픔들이 모두 길이고 꽃이고 구름이에요. 

 

   시의 스승은 앞선 시인들의 시다. 시를 보고 시를 공부해야 한다. 결국 발분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시를 생각하고 질문하고 시로 사는 것. 그것이 전부다. 시골이 좋아서 시골에 집을 짓고 하룻밤을 자더라도 그곳에 내려가 자고 싶은 마음. 그것이 시다. 시가 좋아서 시의 집을 짓고 하룻밤을 자더라도 시와 자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면 족하지 않은가. 

  토끼탕에 술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앞 자리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릴 적 나는 어떻게 토끼를, 개를, 닭을 먹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짐승들을 잡아먹어야 하는 인간들을 혐오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혐오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생각은 '모두가 살고자 한다'는 말이었다.  모두가 살기 위해 먹는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주머니 여기 5시 백숙입니다. 계산을 치르기 위해 내가 한 말이다. 다시 웃음이 나온다. 5시에 모여 닭 한 마리를 먹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일까. 5시 백숙이 시일까. 시가 아닌 무엇일까. 구 버드나무집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나는 이제 8시 백숙일까. 시일까, 아니면 묶여 있던 개일까. 그 옆을 지나가는 고양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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