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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10. 2024

허리론

  

  허리는 몸의 중심이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는 말은 다른 이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직 문화에서도 '허리'는 중요하게 쓰인다. 허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 간부들이다. 허리가 튼튼해야 조직이 튼튼한 법이다. 글을 쓰는 문단에서도 허리 역할을 하는 문인들이 있다. 허리는 몸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니 조직에 허리가 없다면 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허리는 어느 구성원보다 중요하다. 중간층이 없는 부익부빈인빅의 사회는 위태롭다. 위와 아래를 조정할 수 있는 허리가 없는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생에서 허리를 어디쯤으로 봐야할까.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40대가 아닐까. 마흔의 자리에 서면 사회에서 중심의 자리에 선다. 조직에서도 마흔은 그동안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일을 진행하기 좋은 나이이고 체력도 떨어지지 않는다. 관록이 붙어 선후배를 두루 알고 일을 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니 40대는 허리 역할을 하기에 적당한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농촌에서  허리 역학을 하는 나이는 60대, 혹은 70대까지 올라가니 상황이니 허리의 나이를 40대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

  문학계에서도 허리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고 하겠다. 문학에 관심에 재능이 있는 문청(문학청년)들은 대부분은 서울로 올라가고(서울도 사정이 녹록치 않다.) 지역은 활동하는 문학인들이 나이가 높아지고 있다. 퇴직하는 나이 60~65세에 새로 문학에 발을 들이는 분들이 지역문학을 이끄는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허리 역할을 하는 분들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활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환경이 이리 변하게 된 것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런 환경을 중심으로 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환경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실버 문학, 청년 문학이 서로 소통하고 구심점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 함께 지역문학을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지 모른다. 고질병이 되어 있는 이편과 저편의 갈등과 편견의 뿌리가 깊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문학인들이 서로 갈라지고 폄하하고 적대시하는 풍토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을까. 내로남불이 다른 곳만의 일일까. 문학인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성을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전통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것만 지키려고만 한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점점 고루해지고 낡아가기만 할 뿐이다.

   제대로 된 허리가 없거니와 있더라도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심이 없으니 몇 사람의 입김에 따라 움직이는 문학판이 된 것이다. 소위 문학판만 그러겠는가. 다른 예술판도 사정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몇 사랑의 봉사(혹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로 겨우 버티는 형국이다. 그럴수록 서로 존중하면서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의 난국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저마다 이익에 눈이 어두워 주위를 살피지 않는다면 공멸을 자초할 뿐이다. 챗GPT마저 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명령어만 잘 집어넣으면 그럴싸한 시 한편을 만들어낸다. 챗GPT에게 허리가 되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각성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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