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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07. 2024

스펙트럼

 보이지 않는 빛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스팩트럼은 글을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스팩트럼은 광학에서 가시광선, 자외선,적외선을 파장에 따라서 배열한 것 혹은, 추상적 개념이나 견해 따위에서, 여러 가기 갈래로 나뉠 수 있는 범위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스펙트럼의 종류에 방출과 흡수가 있듯이 글에도 표과 이해가 존재한다. 표현은 기존의 표현을 변주하여 복사하고 이해는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는 부분에 잇대어 지식과 지혜를 넓혀가는 일이 아닐까. 


   왜 갑자기 어려운 스펙트럼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우리의 생을 풀어보면 어느 시기 살패의 충격, 상처와 아픔, 감당하기 힘든 시기 등이 존재한다. 때로 우리의 삶은 버티기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회피의 시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서는 그런 시기가 있어 우리의 삶이 더 의미 깊다는 말을 하기 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도 무한히 확장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와 아픔도 수축되듯 점점 줄어드는 경험을 한다. 신기한 일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폭이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오는 과정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았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경험이 있다. 한순간에 내가 가져왔던 아버지의 이미지가 모두 벗겨지는 체험이었다. 항상 강하고 다부지고 오기가 충만했던 아버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힘 없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실은 연약한 심성을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의 눈으로만 아버지를 봤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다정한 시간을 가졌더라면 나는 아버지와 좀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한 사내의 아픔과 절망, 혹은 꿈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나 아버지는 나에게 멀리 있는 존재였다. 내 스펙트럼에 걸려든 아버지의 기억은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진 사내였고 아버지 형제들을 잘 보살피고 할머니께 효도를 해야 하는 의무감을 진 사내였고 다른 것은 몰라도 자존심과 오기를 잃어버리면 사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자식에게는 엄격했으나 아버지는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내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무엇이라고 했던가. 검사는 사람을 잡아가두기 때문에 싫다고 했고 국회의원은 사람들의 대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기억은 전체가 아닌 파편처럼 아프게 기억의 중간중간 박혀 있다.

 

  연세가 드신 아버지는 나를 보면서 곧잘 웃으신다. 전에 없이 살가워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안경을 쓰고 아버지를 바라봤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 분이 아니던가.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펙트럼에 비춘 듯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드들강에 가서 같이 멱을 감던 일, 매를 드신 후 부은 내 종아리에 안티프라미를 발라주시던 모습, 남평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달력으로 내 책가우를 싸 주시던 모습. 연필을 둥글게 깎아 새로 산 필통에 크기별로 넣어주시던 모습... 

   아버지와 함께 있던 시간이 행복한 나로 있던 시기였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일은 스펙트럼을 통해 아버지를 보은 일 같다. 하나의 기억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경험을 한다. 몇 번을 돌려보면서 이제서야 보이지 않던 주변의 환경이 보이고 당시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 아버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 엄할 수 밖에 없었던, 오기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냉정할 때는 모질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모습이 다가왔다. 


  한 인간을, 한 가족을, 한 사회를, 한 시대를 읽어내는 일은 하나의 눈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지금의 나의 모습 또한 시간이 흐른 뒤에 고정된 이미지로 기억될 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들춰보면 아니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다양한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를 나를 제대로 보고 있냐고. 하나의 관점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냐고, 고정된 사고에 빠져 있지 않냐고.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지는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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