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으니까 침대에 있을 필요가 없다. 집에서 나와 직장에 가서 나는 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열심이 일을 한다. 이 정도 일은 거뜬하다는 듯이 일을 해치운다. 관리자는 웃으면서 더 많은 일을 가져다 준다.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지요? 라고 묻는 듯 미소를 띤다. 나는 하나 더하기 하나에 헉헉대지만 나는 아프지 않기 때문에 하루의 일을 무사히(?) 끝내고 직장을 나선다.
아픈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아프면 술이 술을 부른다. 부글거리다가 결국 입으로 눈물로 악으로 터져 나온다. 고름이 터지고 술집이 터지고 세상이 터진다. 아픈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다 아픈 사람으로 만든다. 나도 아픈 사람 옆에서 아픈 사람이 되어서 술을 마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픈 사람은 괴롭다고 외친다. 감염병보다도 더 쉽게 퍼져나가는 괴롭다, 괴롭다의 주문이 내 머릿속을 어떻게 하기 전에 서둘러 도망쳐 나온다.
아픈 사람을 보기 위헤서는 중환자실을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몸에 서너 개의 링거를 꽂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누워 있다. 누워서 아프다.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듯이 아픈 사람은 누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잠을 잘 때조차도 서 있고 싶다. 침대를 세워놓고 몸을 묶어놓으면 안 될까. 나는 아프지 않음으로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쉬는 일은 아픈 사람들만이 하는 일이다. 나는 아플 때까지 일을 한다. 일개미처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일을 한다.
의사가 나는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프지 않다. 무통 주사를 놓았다고 했다. 더이상 일을 하면 내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고 이미 썪을 부분이 더 썪어내려 악취가 진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약 냄새도 반찬 냄새도 커피 냄새도 사람 냄새도 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의사는 내 코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준다. 당신 코는 더이상 냄새를 맡지 못해요.
나는 코를 만져보았다. 코는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럼 귀는? 내 귀는 잘 들리고 있어요. 이렇게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잘 듣잖아요. 의사는 빙그레 웃는다. 그것도 내일이면 기능이 다할 거예요. 마지막까지 살아 있기는 하겠지만, 어쩌겠어요. 당신이 아프니 귀도 아픈 거지요. 나는 의사야말로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혀 아프지 않다. 내 귀는 평소보다 더 잘 들린다. 자동차 소리도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도 하늘에서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아, 하늘에서 말하는 소리를 듣다니, 이건 좀 이상하다.
내 눈은 정상이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의사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다.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건가요? 이렇게 사라질 수 있다니. 내가 감염된 거예요. 어제 아픈 사람과 술을 마셔서 내가 괴롭다, 괴롭다 병에 감염된 거라고요. 제발 나를 낫게 해 줘요. 갑자기 내 눈이 떠진다. 여기는 다른 세상이다. 맙소사. 이젠 더이상 아프지 않다. 무통주사도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