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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06. 2024

가계도

  학교에서 가계도를 그려오라고는 숙제를 받고 고민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자형제 중에 막내로 자란 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기억이 별로 없어 가계도를 그릴 때 힘이 들었다. 이름도 나이도 낯설고 생소했다. 그냥 외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라는 명칭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병치레가 잦아 집에 붙어 있던 날이 많았던 이유도 한몫했다. 엄마한테 성함을 물어 간신히 가계도를 작성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 엄마 성은 따르지 않지? 딸들은 엄마 성을 따라야 하지 않나? 


  사촌들의 칸도 다 채워야 했는데 그냥 없다고 할까 하다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엄마한테 물어 봐야 했는데 일을 나가셨는지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묘수가 떠올랐는데 이모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몇 명만 작성한다고 해서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설사 이름을 다르게 쓴다고 해서 누가 알아보겠는가. 나는 멋지게 이름을 붙였다. 


   학교 숙제는 그럭저럭 해결했으나 가계도 그리는 일은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게 했다. 나는 핏줄의 대물림이었다. 어디에 사는 누구의 아들로 불렸고 형제는 누가 있고 동생은 누구며 친척으로는 어디에서 일하는 누가 있고 외가로는 누가 있으며 무슨 일을 한다고 나를 정의했다. 나를 파악하는 방법이 가계도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나중에 이 가계도가 크고 넓어진 것이 족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학문으로도 발전해 보학(譜學)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계도는 머릿속에서 지워졌는데 친구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 처음 편 곳이 성경의 마태복음이었다. 누가 누구를 낳고 그 누구가 그그 누구를 낳아…… 낳고 낳아 예수까지 이르게 되는 가계도였다. 그러니까 족보는 서양에서도 중요했다. 자신의 존엄을 밝히는 가계도는 왕가에서 특히 중요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에서도 족보는 왕족의 ‘피’라는 하는 적통성을 부여했으니 동양이나 서양이나 혈통은 중요한 권력의 정당성이었다.


   신의 축복에 의해, 혹은 하늘의 뜻에 왕이 되거나 귀족이 된 가문의 자긍심, 혹은 정통성은 지금까지 내려온다.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에 따라 신분이 차별화되기 때문에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결정짓는 운명과 같은 잣대가 되어버린다. 인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혈통은 중요한 권위이자 유산이다. 다. 

  

  하지만 누구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지금의 삶의 규정하고 강제한다면 그 사회는 닫힌 사회다. 계층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더이상의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신라의 6두품제도가 신라의 발전을 막았듯이 조선시대의 신분제가 조선의 발목을 잡았듯이 혈통에 고착화된 사회는 개개인은 능력을 보지 못하고 과거에만 집착하게 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자긍성을 높이는 근거가 될 수 있으나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누구의 아들로 누구의 딸로 태어났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므로 노력이 무의해지고 사회는 역동성을 잃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왕후장상에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반기를 든 만적의 난은 신분사회의 동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혈통에 의해, 혹은 권력에 의해 정해지는 신분 사회에 일대 각성이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 때 가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의 아들인데 그 누구가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주인공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개인은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다. 환경에 의해 자라는 나무가 다르듯이 환경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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