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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12. 2024

추억수첩 20

장마

 장마가 오면 화장실 가는 일이 걱정이었제 그때는 변소라고도 하고 뒷간이라고 하고 뭐, 대중없이 똥간이라고도 했제. 큰 항아리를 묻고 그 위에 판자를 깔고 사각으로 구멍을 뚫었는디 구조물이 좀 거기기했제. 판때기를 몇 개 더 덧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슬렁슬렁하게 지어서 비가 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그 위에 비니루를 펼치고 벽돌로 땜방을 하기도 했어. 그야말로 슬렁 변소였제. 문제는 항아리에 금이 가 빗물이 옆으로 새어든다는 점이었어. 비만 오면 똥통이 찰랑찰랑 차오르거든. 다행히 위까지 차오르기 전에 금이 간 다른 곳으로 똥물이 빠나갔제. 자연 배수가 된 셈이지.


  낮에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으나 밤이 문제였어. 갑자기 뭘 잘못 먹었는지 배가 아플 때 화장실 종이 딱지를 구겨서 갔지. 딱지는 내가 다 땄거든. 배꼽을 딱 때리면 개구락지 넘어가듯 벌러덩 들어눕는 딱지를 줍기만 하면 됐제. 두 손으로 한아름 안고 가져와 마루에 올려놓고 잠시 나갔다 들어오면 아, 글씨 할머니가 딱지를 네모로 반드시 펴놓고 가위로 싹뚝싹뚝 자르고 계셨제. 아이고 할머니, 지금 뭐 하세요? 뭐하긴 뒷간에 휴지가 없어서 휴지만든다. 아따, 씨, 할머니는, 그러고 엉엉, 울음이 터졌더랬어. 할머니는 못 본 채 뒷간에 딱지 휴지를 가져다 놓았지. 그것을 비비고 비비면 표면이 순해져 밑을 닦는데는 그만이었제. 암튼 밤에는 캄캄한 화장실이 문제였다. 발을 헛디디면 빠질 수 있어서 조심조심 들어갔다가 성냥을 찾았제. 성냥은 비사표와 화랑, 그리고 유엔이 있었는디 성냥통 육각형 모양이 어떤 질서처럼 보였어.  


 암튼, 바지를 벗고 앉아 있으면 밑이 서늘했제. 빨간 손을 가진 귀신이 똥통 속에 살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오살나게 두려웠거든. 갑자기 빨간 손이 튀어나와 나를 잡아끄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자꾸 밑을 보게 되거든. 그런데 밑은 또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코를 대고 있을 수 없었제. 코를 막고 있다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다행히 일을 마칠 수 있었제. 서둘러 바지를 집어 올리는데 갑지가 밑에서 뭐가 잡는 거여. 가슴이 달랑거렸지. 뭔 일이다냐. 정말 귀신이다냐, 엄마야, 하고 간이 콩알만해져 내려다보니께 바지가 삐져나온 못에 걸려 있는 ㄱ여. 하긴 내가 엄살이 좀 심하긴 했제. 


  지금도 비가 오면 그때가 가끔 생각나제. 피식피식 웃음도 나오고 정말 빨간 손 귀신이 있었던 마냥 간이 콩말만해지기도 하고, 그러제. 요즘 아그들은 그런 추억 하나쯤 가지고 사나 모르것어. 이제 장마라는디 그 예집은 다 허물어지고 번듯한 집이 다시 들어섰드만. 그냥 왠지 그 집을 보면 쓸쓸해. 뭔가 사라져버린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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