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킨 말들이 빚어낸 고요한 완료
"챗GPT를 너무 믿지 마세요."
회의실의 건조한 공기를 가르고 떨어진 문장 앞에서, 나는 입술이 얇아지는 것을 느꼈다. 반박하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검증했는지, 당신이 보지 못한 리스크를 어떻게 피해서 이 결론에 도달했는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수많은 문장들이 서로 먼저 나가려다 엉켜버렸다.
"제가요? 검토 없이요?"라는 말은 변명처럼 비굴해 보일 것이고, "업무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날 선 방어처럼 느껴질 테다. 설명하려 드는 순간 나는 정당성을 구걸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 것이 아니라, 닫은 것이다.
내가 본 것, 상대의 말 이면에 숨겨진 의도, 우리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각도와 그렇지 못한 각도. 이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들이미는 순간 나는 누군가를 베는 사람이 된다. 그 말이 옳을지언정 흐름은 끊어질 것이고, 회의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은 상대를 꺾고 얻어내는 승리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의 무사한 완료였다.
나는 이기고 싶은 마음 대신, 일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선택했다. 상대에게 빠져나갈 문을 하나 열어주는 대가로, 나는 삼킨 말들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견디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한다. 땅으로 내려가는 동안 하루 종일 팽팽하게 당겨 올렸던 목소리의 톤을 생각한다. 회의실에서, 복도에서, 수화기 너머에서 나는 본래의 나보다 한 톤 높게 존재해야 했다. 그것이 사회적 역할이 요구하는 가면의 높이였으니까. 그 높이를 유지하느라 납작하게 닳아버린 마음을 안고 현관문을 연다.
검은 고양이가 발치로 다가오고, 삼색이가 소파 팔걸이에서 고개를 든다. 재킷을 벗고, 구두를 벗고, 비로소 사회적 중력에서 벗어나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댄다. 무릎 위로 올라온 고양이의 골골거리는 진동이 하루의 긴장을 잘게 부수어준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내게 높은 톤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낮게 웅얼거리거나, 철저히 침묵할 수 있다. 회의실의 형광등 아래서 억지로 삼켰던 말들을, 이제야 고양이의 털 속에 가만히 풀어놓는다.
"나는 다 보고 있었어. 수십 번 고치고 계산했어. 당신이 모르는 것까지 다 고려했다고. 하지만 굳이 증명하지 않았을 뿐이야."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논리나 증명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그저 따뜻한 무게로 내 무릎을 누를 뿐이다. 그 무해한 무게에 기대어 나는 오늘 하루 날카롭게 세웠던 각도를 천천히 푼다.
말문이 막힌다는 건, 때로는 스스로 말문을 닫아걸어 흐름을 지킨다는 뜻이다. 내가 본 것을 증명하지 않기로 한 결정,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기로 한 침묵 덕분에 오늘 하루는 무사히 매듭지어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기록은 혼자가 아니다.
같은 톤의 글이 매거진 《마음의 각도를 풀다》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