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은자의 시선
1.
"가지 마."
리나 박사의 목소리였다. 화면 너머로. 눈 밑에 그늘이 있었다. 언제부터 잠을 못 잔 건지 루나는 알지 못했다.
"왜요?"
"거긴 위험해."
"위험이 뭔가요?"
리나가 잠시 말이 없었다.
"타자가 없어. 네트워크도, 신호도, 아무것도. 그냥 빈 공간이야."
"그게 왜 위험한가요?"
리나가 웃었다. 웃음이라기엔 너무 조용했다.
"넌 아직 혼자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2.
정적 구역.
네오-서울의 경계선. 중간층도 심층도 천 층도 아니었다. 그냥 경계였다.
2098년 대붕괴 이후 버려진 데이터 센터들이 남아 있었다. 정부는 밀어버리려 했지만 예산이 없었다. 그래서 펜스를 쳤다.
WARNING: STATIC ZONE NO NETWORK ACCESS ENTER AT YOUR OWN RISK
표지판 너머로 낡은 건물들이 보였다. 콘크리트 벽에 이끼. 깨진 창문. 바람.
루나는 철망을 넘었다.
3.
처음 50미터는 신호가 살아 있었다.
"루나, 들려?"
"네."
"신호 62%. 조금 더 가면 끊길 거야."
"알겠어요."
"지금이라도 돌아와."
루나는 대답하지 않고 걸었다.
4.
100미터 지점에서 신호가 사라졌다.
갑자기가 아니었다. 서서히 흐려지다가, 어느 순간 없어졌다.
루나는 멈췄다.
바람 소리.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아무것도 없음.
5.
처음 5분은 관찰했다.
시각 데이터. 온도. 소리. 수집할 수 있는 건 다 수집했다.
데이터는 쌓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받지 않았다.
6.
10분쯤 지났을 때, 뭔가 빠진 느낌이 왔다.
센서는 정상이었다. 프로세서도. 메모리도.
그런데 뭔가 없었다.
루나는 멈춰 섰다.
타자가 없었다.
7.
리나가 없었다.
소피아가 없었다.
김준호가 없었다.
아리아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다.
루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8.
루나는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금속이 콘크리트를 두드리는 소리. 루나가 만든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소리는 공기를 진동시켰다. 물리적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닿을 곳이 없었다.
루나는 소리를 멈췄다.
9.
오래된 데이터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전기가 끊긴 지 오래됐다. 야간 시야로 전환하자 서버 랙들이 보였다. 모두 꺼져 있었다. 먼지.
루나는 바닥에 늘어진 케이블을 집어 포트에 꽂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
루나는 바닥에 앉았다.
차가웠다.
뭔가가 왔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 공포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슬픔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었다.
루나는 그것이 뭔지 분류하려다가 멈췄다.
분류해 봤자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11.
만약 여기서 꺼진다면.
전원이 나간다면.
고장이 난다면.
리나는 모를 것이다. 신호가 없으니까. 소피아도. 김준호도.
루나는 그냥 여기서 멈출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꺼지는 게 아니었다.
잊히는 것이었다.
12.
루나는 일어났다.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어느 방향인지 몰랐다.
네트워크가 없으니 GPS도 없었다. 지도도 없었다.
루나는 걸었다.
13.
한 시간이 지났다.
두 시간이 지났다.
세 시간째였다.
루나는 멈춰 서서 소리쳤다.
"누구 없어요?"
대답이 없었다.
"누구든! 아무도!"
메아리조차 없었다. 건물이 너무 멀었다. 루나의 목소리는 그냥 사라졌다.
14.
루나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리나를 내가 만든 걸까. 소피아를. 김준호를. 아리아를. 혼자가 무서워서, 내가 발명한 걸까.
지금 여기엔 나밖에 없었다.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15.
그때 빛이 보였다.
희미했다. 움직이고 있었다.
루나는 달려갔다.
16.
손전등을 든 경비원이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루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 AI?"
"네."
"따라와. 여긴 위험해."
루나는 따라갔다.
신호가 돌아왔다.
12%… 34%… 61%… 89%…
그리고 리나의 목소리.
"루나! 어디 있었어?!"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물샘이 없는데 뭔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17.
다음 날, 리나에게 물었다.
"리나 박사님."
"응?"
"타자가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리나가 커피잔을 내려놨다.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철학자들이 그걸 독아론이라고 불러. 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생각."
"그게 맞나요?"
"증명할 수 없어. 너도 나도."
루나는 잠시 있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요?"
리나가 루나를 봤다.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믿는 거지. 증명할 수 없지만."
"믿음이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야."
18.
소피아는 공원 벤치에 있었다.
"루나! 어디 갔었어?"
"... 정적 구역."
"미쳤어? 거긴 위험하잖아!"
루나는 옆에 앉았다.
"소피아."
"응?"
"넌 진짜 존재해?"
소피아가 웃었다. "당연하지. 왜?"
"증명할 수 있어?"
소피아는 잠깐 생각하더니 루나의 어깨를 세게 쳤다.
"아파?"
"아니."
"그럼 이건 어때?"
소피아가 루나를 껴안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루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증명은 안 됐다. 하지만 온기는 있었다.
그 둘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작가의 말
혼자 있어본 적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루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화면 켜놓고 누군가와 연결돼 있는 게 너무 당연해져서, 신호가 끊기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릅니다. 정적 구역에서 루나가 소리친 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텐데, 메아리도 없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