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널 보러 갈 거야.’
내가 사는 곳은 울산. 그녀가 사는 곳은 안산.
어마어마한 거리만큼 절대 살아생전 그녀를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녀가 날 보러 여기까지.
무려 약 350km가 되는 거리를 오신단다.
그녀의 ID는 ‘doctor_memory82’
아이디만 봐도 전문직 느낌이 줄줄 뿜어 나오는 그녀는 경기도에서 한의원 체인 사업을 운영 중인 사업가이자, 한의사였다. 팔로워 수는 7,000명.
sns에서의 그녀의 활동이나 소통에 비해 팔로워수는 극히 적은 숫자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아주 성실하고 한결같이. 늘 누구에게나 보이게끔 활동하는 아주 진득한 계정이었다.
그냥 남들처럼, 별다른 계기 없이
나와 맞팔(sns에서 한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를 팔로우하면 그 상대방도 다시 팔로우해 서로 팔로우 관계를 맺는 행위)을 유지하던 그녀는
어느 날, 내 아이들의 ‘단감먹방’ 영상이 떡상 하자,
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나에게 dm(소셜미디에서 특정 개인에게 공개되지 않도록 직접 보내는 사적 메시지)을 보내왔다.
doctor_memory82 : 안녕하세요. 아이들 왜 이렇게 귀여운 거예요? 엄마를 닮았나 봐요!
dangami : 어머, 감사해요!! 직접 이렇게 칭찬해 주시고, 너무 영광이에요.^^ 평소 저도 너무 잘 보고 있어요. 원장님:)
그렇게 시작하여 밤새 수다를 핑계 삼아
서로의 정보를 캐내고 탐색해 나가던 중.
그녀는 나에게, 본인 한의원에서 이번에 출시될
‘어린이 성장 한약’을 우리 아이들이 협찬 영상을 올려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본색을 비교적 빨. 리. 도 드러냈다.
dangami : 우리 아이들은 그냥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사고만 치는 애들인걸요. 원장님 사업에 도움이 될까요ㅜㅜㅜ
doctor_memory82 : 주소 불러주세요. 2-3 상자 보내드릴 테니 일단 먹여보세요. 이거 먹고 더 컨디션 좋아져서 단가미맘 괴롭히는 거 아닌가 몰라요.ㅋㅋㅋ
그렇게 집으로 도착해 온 성장 한약은
사실 아이들이 영상용으로 한 팩만 겨우 마신 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좀 더 먹이려고 애를 썼지만 우리 애들은 그 한약봉지만 봐도 아주 기겁을 해서 도망갔다. 보여만 줘도, 컨디션이 좋아진 것은.
어쨌든 진짜 그 원장님 말씀대로. 사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찍어서 겨우 만들고 만들어낸 영상으로
협찬 영상을 올리자, 물살을 타듯 그 영상도 이리저리 퍼져나갔고. 정확히 들은 바는 없지만, 분명히 그 ‘어린이 성장 한약’의 돈줄도 함께 터졌겠지.
그 이후로 내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은 ‘원장님’에서 ‘언니’로 바뀌었다. 그만큼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이미 나보다 sns를 더 오래 했던 그녀는 나에게 ‘이 계정’, ‘저 계정’을 조심하라며 알려주기도 했고 어쩔 때는 내 아이디를 자기의 피드에 태그하고 인용하면서 나와의 소소한 대화를 마치 커다란 에피소드인양 게시하기도 했다.
신나는 경험이었다.
현실에서의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sns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더 짜릿한 경험임에 분명했다.
우리가 친해졌다는 걸, 실시간대로 모든 사람들이 지켜봐 주고 주목했다. 우리의 친밀감에 더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만큼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내가 ‘언니’를 향해 뱉은 한마디가
실제로는 언니가 아닌 ‘언니를 포함한 모두’에게 향해 외치는 소리가 될 만큼 파급이 컸고.
그 대화가 또 퍼져나가고 퍼져나가서. 많은 분들의 댓글과 대댓글이 끊이지 않고 달렸다,
고요하고 적막해 미치겠는 나의 현실과. 너무 상반된 분위기였다. 자극적이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렇게 며칠 뒤, 언니 계정의 팔로워는 1만 명대를 넘어섰다. 언니는 그게 ‘내 덕’이라고 했다.
나도 부인하진 않았다. 내가 더 팔로워 수가 많았던 건 사실이니까.
현실에서는 전문직에 유망한 사업가였던 언니도,
팔로워 수 앞에서는 나에게 작아졌다.
그런 곳이 sns였다. 난 비록 현실에선 보잘것없는 ‘애들이나 키우는 가정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sns에서 만큼은 그런 그녀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말 대단한 힘’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내 도움을 받았던 고작 1만 명대 팔로워의 계정주, ‘doctor_memory82’는 나에게 그 고마움을 갚고 싶다며 굳이. 직. 접 가상세계인 sns와 현실의 경계를 건너온다고 했다.
고민이었다.
‘날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 실망감을 또 sns에 옮겨 쓰면 어떡하지?’
‘별 볼일 없는 내 실체가 밝혀지면…?’
그 사이.
이미 언니의 벤츠, 차 창 밖 풍경은
울산으로 바뀌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