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나락관

Round 1- 고요 속의 외침

by Kiddo


“자기야. 나 지금 울산이야. 뭐야, 왜 이렇게 가까워?

진짜 눈 깜박할 사이에 오네. 자기가 이 동네 맛집 데려가줘야 해”


한껏 들뜬 목소리의 ‘doctor_memory82’ 언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 아이디 ‘단가미맘’이라

부르더니 이제 ‘자기’라고 부르고 있어.

이제 난 그녀에게 ‘자기’라고 불릴 만큼 친근한 사이가 된 걸까.


난 사실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자기’라고 불리는 게. 처음이었다.

아, 물론 여자들끼리 불리는 그 ‘자기’ 말이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벌써 3년 차지만, 난 아직까지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단 한 명도 없으니까. 심지어 아이들과 같이 기관을 다니는 아이친구들의 엄마들도…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접근금지’라고 어디 적혀있나…?

싶을 정도로. 뭐가 문제였을까. 내 소심한 성격? 낯가림? 붙임성이 없어서? 삭삭하지 못해서?


다들. 항상 내가 빤_히 서있는데도, 그들은 자기들끼리 한치의 미안함도, 어색함도 없이 날 따돌리면서

‘자기, 자기’ 하고 잘도 어울려 다녔지.

나에 대한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여자들끼리 서로 어울리며 부르고 불리는 그 단어.

그렇게 신경 쓰였고 샘났던 단어.

나만 빼고 다 불리고, 또 불러본 그 ‘자기’라는 말을.

내가 드디어. 이렇게 불리다니. 근데 게다가 날 불러주는 이 여자는 이 동네 엄마들하고는 차원이 다를 만큼 훨씬 잘난 여자야.

집에서 애나 보는 내 근. 처. 의 여자들이랑은 수준자체가 다르니까.


수도권에서 크게 사업하는 아주 격식 있고 배운 여자가. 그 유능한 여자가…

그런 여자가, 심지어 그 친밀하고 다정한 ‘자기’라는 말로 난 본다고 이곳 먼 곳까지 오고 있어.


아, 아마 나 또한 여기 동네 여자들하고 어울릴 급이 아니었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걸 먼저 알아보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던 거야. 이러려고 지금까지 이토록 난, 현실에서 외롭고 혼자였구나.

역시 사람은, 자기한테 어울리는 ‘자리’라는 게 있나 봐.



그녀를 만나기 30분 전,


결혼 전 아버님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해주신,

정말 거의 친정엄마가 뜯어내다시피 해서 받았던

‘1캐럿 다이아목걸이’를 드디어 꺼냈다.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살면서 이 목걸이를 언제 한번 걸어볼까. 이 값비싼 목걸이를 내가 진짜 걸게 될 날이 올까… 하면서 어느새 까먹고 지냈던 내 예물.


드디어 오늘 내가. 아니, dangami맘이.

‘doctor_memory82’ 언니급 정도를 만날 때, 이 정도는 돼야 어울리는 거였어.


깨끗하게 화장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그리고 내 예물 목걸이를 차고. 그렇게 나 또한 그녀를 마주하러 나갔다.


현실에서 SNS의 경계 너머로.





어머, 자기 맞지. 단가미맘~”


스타벅스 창가 쪽 자리에 홀로 앉아있다가 멀리서 오는 날 발견한 ‘닥터메모리’ 언니.

큰 소리로 인사하며 빠르게 나에게 달려 나왔다.


진짜???? 저 여자라고???

사진 속에 그 화려하고 뽀얗던 사람이….

정말 저 사람이라고??

너무 놀라고 당황했지만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 티 나지 않았겠지?


어머. 언니, 안녕하세요~”


밝고 쾌활하게. 연습하던 데로 나 또한 인사했다.

늘 활기차고 씩씩한 ‘단가미맘’ 계정 그 모습대로.


자기 너무 귀엽다~ 실제로 보니까~~.

여기 와서 앉아 앉아”


닥터메모리언니가 내 손을 끌어당겨

원래 자신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데려갔다.


가까이서 마주했다.

매일 수다 떨던 사진 속의 언니를 실제로.



자글한 주름. 너무 진행된 탈모에 휑한 두피가 드문드문 드러나는 머리며… 입술색깔은 또 왜 이렇게 까만 거야. 거기다가 누렇고 벌어진 앞니는 뭐야…


아니 40대 중반이라더니. 진짜 40대 중반 맞아??

무슨 50대는 그냥 넘어 보이는데.


진짜 내가 알던 그… 수도권에 다섯 개의 한의원 체인을 운영한다는 그 여자.. 맞아? 그 동네에서 맥을 짚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던, 그 유명한 ‘닥터메모리언니’가 맞냐고!!!


도대체 프로필사진에 하얀색 가운을 입고 팔짱을 낀 채 강렬하게 미소 짓던…그 프로페셔널하고 고급스러운 사람은 진짜 어디 있는 거야…


사진으로 만나던 모습과, 현실의 모습 사이에 깊은 간극에 나는 너무 놀라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내색하지 말자, 내색하지 말자….’



언니. 진짜 고급스럽다~~~

실제로 뵈니까 너무 화려하고 이쁘잖아요 언니!!!!!! “



‘자기’란 호칭에 이만한 ‘과찬’ 정도는 해줘야지

단가미맘이야…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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