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어령 선생님은
사람마다 각자 1인분의 외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 인생이라는 메뉴판에는
외로움만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1인분의 절망’도 있고,
‘1인분의 고통’도 세트로 딸려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릇 구석 어딘가에는-우리가 자주 그 존재를 잊어버리곤 하지만-행복이나 희망 같은
조각들도 슬쩍 곁들여져 있다.
그것이 내가 받아 든, 온전한 나의 1인분이다.
가끔은 그 1인분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외로움과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 찬, 꽤 묵직한 1인분.
우리는 그것들이 넘치지 않게
꽤 성실하게 눌러 담으며 살아간다.
뚜껑도 닫고, 테이프도 붙이고,
아무 문제없는 척 식탁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엔 조금씩 흘러나온다.
식탁 위를 따라 번지다가,
아, 이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같은 식탁에 놓인 다른 그릇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안다.
다들 비슷하다.
디자인만 다를 뿐, 내용물은 대동소이하다.
어디는 조금 새고, 어디는 이미 금이 가 있다.
이상한 건, 그릇들이 모인다고 해서
식탁이 더 어두워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 흘린 걸 다른 누군가가 휴지로 쓱 닦아주고,
금 간 자리를 보고는
“그 정도면 아직 쓸 만해” 하고 말한다.
그러다 각자 손잡이의 금을 하나씩 보여주며,
다들 그럭저럭 사용 중이라고 웃는다.
깨지고 금이 간 쪽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그릇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식탁은 제 역할을 한다.
인생을 갑자기 윤택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계속 먹고살 수 있게는 해준다.
그제야 알게 된다.
모든 걸 내 그릇 하나에만 담아둘 필요는 없다는 것을.
계속 눌러 담는다고 깊은 맛이 나는 건 아니고,
자칫하면 그냥 상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도.
그래서 오늘은, 조금 비워두기로 한다.
외로움 옆에 자리를 남겨두고, 행복이나 희망 같은 걸 슬쩍 얹어두기 위해서.
아주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다음 끼니도 무난하게 먹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