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의 태생적인 성향에 가깝다.
사전에 따르면 덕질이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파고드는 일’이라고 정의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차라리 자발적인 조난에 가깝다.
덕후들 사이에는 ‘덕통사고’라는 말이 있다.
덕질과 교통사고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덕질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되지 않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예고 없이 달려드는 트럭처럼,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덕질은 생각보다 심각한 활동이다.
일단 발을 들이면
인생의 상당 부분을 저당 잡혀야 한다.
시간과 정성은 기본이고,
통장의 잔고 역시 꽤 가파르게 깎여나간다.
그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사람들은
입덕 전 ‘입덕 부정기’라는
마지막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 귀여워”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귀여움’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위험한
항복 신호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조난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대상은 당시의 아이돌이었다.
오빠들이 나의 세계였던 3년 동안,
나는 용돈의 8할을 굿즈에 쏟아부었고
아무도 없는 줄을 다섯 시간이나 혼자 지켰다.
그 시간은 오빠들을 향한 사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이만큼이나 누군가를 오래,
지치지 않고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고독한 레이스이기도 했다.
두 번째 조난은 결혼 후에 찾아왔다.
남편이 있는 처지에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묘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남편의 넓은 아량덕에
덕질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이성이 아니라
‘idol’, 도달할 수 없는 ‘이상(理想)’이란 걸
이해해 준 덕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시간과 정성, 돈을 버려가며 대체 무엇을 얻느냐고.
하지만 덕후들은 안다.
그 대가로 우리가 받는 것은
‘감정의 충만함’이라는 아주 귀한 통화(通貨) 사실을.
영화 〈아가씨〉의 대사처럼,
그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다.
판에 박힌 일상 아래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분수처럼 솟구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보건복지부가
‘임영웅’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콘서트장에서 계신
할머니들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생기가 가득하다.
티켓팅의 희열,
콘서트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환희.
그 일련의 과정은 그 어떤 영양제보다도
노년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나는 아직 임영웅의 노래를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맙다.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선명한 색을
입혀주고 있지 않은가.
나의 바람은 소박하다.
훗날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내 곁에 나만의 ‘임영웅’이 존재했으면 하는 것이다.
팔팔한 관절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내 인생을 망치러 와줄
새로운 구원자를 언제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