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졌을 때의 대처법
일상을 부지런히 살아가다 보면 일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머릿속에는 '바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럴 때 나는 일상의 균형을 잃곤 한다. 소위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도 내내 일에 묶여있게 된다. 내게 주어진 상당한 양의 과제를 처리하려다 보니 잠을 줄이고 끼니를 거르고 운동을 거르게 된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나의 컨디션은 점점 악화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피곤하다. 그래서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투자한 시간만큼의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
나는 일상에서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일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어야 일상이 윤택해진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늘 실패한다.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또한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일상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한꺼번에 많은 업무가 주어지는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균형을 잃게 된다. 자전거를 잘 타고 있었는데, 옆에서 누가 툭 밀어서 넘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일어나서 페달을 밟으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페달을 밟는 것은 쉬우나, 처음부터 다시 페달을 밟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의 의지를 탓했다. 심하면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왜 늘 균형을 잃을까? 나의 의지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을 낳았다. 나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오늘부터는 다시 균형을 되찾아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그 '오늘부터'라는 말이 참 무거웠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더 깊은 좌절감에 빠졌고, 일상이 지겨워졌고, 삶의 의미마저 잊어버리게 되었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균형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균형을 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동적인 단어로 이해해야 한다. 어릴 적 체육 시간에 평형대에 올라 균형을 잡았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가만히, 흔들림 없이 평형대 위를 걸었던가? 그렇지 않다. 양팔을 휘적이면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았다. 이리 휘청이고 저리 휘청이면서 평형대 위를 걸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균형이란, 흔들리지 않는 정적인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균형을 잡아가는 동적인 '과정'이다. 나는 균형이 무너진 결과에 다다른 게 아니라, 균형을 맞추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휴식은 없고 일만이 가득한 일상이거나, 일은 없고 휴식만이 가득한 일상에서, 나는 좌절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모든 일상의 시간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상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생각하기보다 평형대 위를 걷듯이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툭툭 털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균형을 맞추려고 구태여 노력하면 내 마음만 힘들 뿐이다.
우리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태평성대의 역사는 짧다. 혼돈의 세상을 휘어잡아 태평성대를 이룩한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속에서부터든 밖에서부터든 세상의 균형은 흔들린다. 인간은 어떻게든 편을 가르기 마련이고, 한쪽은 다른 한쪽을 짓밟으려 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균형을 싫어할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역사를 넓게 보면 그렇지 않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짓밟는 데에 성공했다고 한들, 짓밟힌 쪽의 살아남은 몇몇은 숨어서 기회를 노리다가, 결국 세상을 뒤집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하며 그 자체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일상도, 혼란스러운 세상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견딜 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