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젊음에게

나 올림

by 가을열기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나에게 건넨다.


“힘내.”


남들에게는 흔하게 건네곤 하는 위로의 말이지만,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건넨 적이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한들, 그저 습관적인 되뇜에 그쳤을 뿐이다. 본래 말이란 흔하게 쓰이다 보면 가볍디가벼워지는 법이기에, 이 편지에서는 짤막한 두 어절에 영혼을 꽉꽉 눌러 담아 본다. 지금의 나에게는 묵직한 위로가 필요하다.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을 충분히 자도 피곤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핏발 선 눈, 푹 꺼진 눈두덩, 움푹 팬 볼살. 내가 아침마다 마주하는, 안쓰러운 거울 속 내 모습이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을 벌였다. 해야 할 일이 내 앞에 끝이 안 보일 만큼 쌓여있는 듯한 답답함 속에서, 숨 돌릴 틈이 없다. 그런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 스스로 온전히 짊어질 수밖에.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것도 같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으레 건네곤 하는 진부한 관습일 뿐이라 생각했었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야. 우리 아들 건강 잘 챙겨.”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말씀에 담긴 아버지의 깊은 마음이 스물넷이 되어서야 와닿는다.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이 ‘젊음’의 시간을, 어른들은 이미 살아 보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어른들은 말한다. 살아보니 젊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더라,라고. 젊음을 통과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 말씀에 담긴 어른들의 깊은 마음을 짐작해 본다.


어차피 통과해야 하는 젊음이라면,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음이라면, 지금의 힘듦을 받아들일밖에. 어쩌면 지금의 힘듦도 젊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시간이 흐르고 훗날 감각이 무뎌지게 되면, 이 힘든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만큼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젊음을 말이다. 예민한 감각은 우리에게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지만, 그만큼 행복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양날의 검이니까. 다만 지금의 내가 그 행복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너무나도 힘든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바라보려 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 세상의 아름다움은 늘 나의 곁에 있으니까. 이 젊음을 만끽하려 한다. 「눈이 부시게」의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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