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서 '존버'
대학 졸업 후 쉴 새 없이 계속 일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뭐든 열심히 했지만, 심각하게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같이 시작했던 (여자) 친구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결혼하고 가정을 가진 친구 중에서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다.
인생의 몇몇 순간이 닥치면, 한 명, 또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이렇게 일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 순간마다 버텨내고 지나치는 선택을 한 덕분에 지금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결혼, 임신, 초기 육아를 모두 거치면서도 한 번도 회사를 관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각자의 일을 존중하는 배우자를 만났고, 시어머니와 시이모들이 아이를 전담해서 키워주셔서 그랬던 것 같다. 회사에 와서는 적어도 아이생각을 잊어버리고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운이 좋았다.
내게 첫 번째의 심각한 위기(일을 그만둬야 하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왔다.
또래보다 덩치가 크고 활발했지만 외동이었던 아들은 아마도 친구를 사귀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또래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이들과 몸으로 뒹굴면서 친구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1학년 입학 후 3월이 지나기 전에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00 이와 00이 사이에 다툼이 좀 있었습니다. 학교로 좀 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놀랐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없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학교로 달려가,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남자아이와 필통을 가지고 놀다가 시비가 붙은 모양인데, 두 아이가 주먹다짐을 하다가, 덩치가 작은 상대방 아이가 교실바닥으로 넘어졌다고 했다.
주위 아이들이 선생님을 불러와,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담임선생님은 "학교폭력위원회"를 운운하며 심각한 어조로 사건을 설명했다. 더 결정적으로는..
'아이의 정서가 불안해 보인다'며 '어머님이 일을 하시면 주 양육자는 누구시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덜컥 '내가 일을 해서 아이가 정서가 불안한가? 폭력성이 생긴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고, 하늘이 노랬다. 일을 관두고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야 하나 싶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날 밤은 한숨도 못 잤던 기억이다. 같이 살고 계시던 시어머니가 딱 붙어서 돌보고 계셨지만, 늘 회사에서 늦게 오던 엄마에 대해 빨리 오라고 늘 얘기하던 아이이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는 치고받고 하면서 자란다고는 하지만, 여자대학교 부속 사범대학출신이 대부분인 초등학교 교사들의 눈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거칠어 보이는 우리 아이가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이러다 선생님들한테 1학년부터 찍혀서 계속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던 내게 주말에 만난 남편 선배의 부인이었던 한 언니가 딱 한마디를 해주셨다.
"(일 그만두지 말고) 버텨. 금방 지나가"
그녀 자신도 교직생활을 했으나, 두 딸이 초등학교 고, 저학년 시절에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사표를 쓰셨다고 했다. 딸들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지나고 보니 엄마가 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들은 각자의 몫만큼 자라고, 아이들이 모두 자라고 나면 엄마가 자신의 일을 갖고 있기를 오히려 바란다는 것이다. 전공을 살려 수학과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지만, 지나고 보니 버텼어야 했다며 교직을 그만둔 것을 후회한다고 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서 버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 그것을 해내는 사람은 가치 있다고. 나중에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내 일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게 될 거라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떠올렸다. "버티자. 버티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라고 되뇌면서.
사실 아이를 혼자 낳은 것도 아니고, 다 같이 키워야 하는 게 맞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아니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육아의 1차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아이를 한창 낳고 키우는 나이 때는 대리, 과장급 정도이다 보니, 아이 봐주시는 아주머니께 월급을 드리고 나면, 월급이 남지도 않는다.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에 금전적으로도 크게 효용이 없다 보면, 하나둘씩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그 선배 부인의 말처럼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서 '존버' 했더니 그 시절도 지나갔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크게 손이 가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엄마가 없으면 눈치 보지 않고 친구들과 놀 수 있다면서 은근히 집에 늦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눈치이기도 했다.
그 세월을 버티기가 힘들었으나, 지나고 오니, 잘 지나왔다 싶다.
무엇보다 아이와 남편, 가정생활이 아닌 '내 일'이 있다는 점과 경제적으로 독립했다는 점이 내게는 참 중요했다.
미국에 와서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서 쓰던 1년간의 전업주부 시절은 좀 느낌이 달랐다.
좋기도 했고, 안 좋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점심, 저녁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볼까를 고민하고 외식이 한국에서처럼 자유롭지 않은 미국에서, 집에서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덕분에 돌솥비빔밥, 탕수육, 등갈비 등등... 집밥 스킬이 많이 늘었다.(집밥 스킬은 미국에서 살려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의존적이라는 느낌은 낯설고 별로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계속 경제활동을 해왔어서 그런지, 갑자기 비생산적인 인간이 된 느낌(전혀 절대 그렇지 않은데도)이 들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미국에서 취업을 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수많은 실패 끝에 HR 경력을 미국에서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도 한국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낯선 미국땅에서의 직장 생활 역시 아직은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서 버티는 기분이다.
비록 앞으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버텨내는 힘도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 '버텨. 금방 지나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