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최악의 리더십

그래도 회사는 돌아간다. 10년 후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by Alex in Irvine

요즘 리더십에 관한 책도, 블로그도, 말들도 진짜 많고,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좋은 글들도 참 많다. 20년도 훌쩍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리더십 포지션에도 15년 정도는 있어봤지만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말로 '케바케'가 맞는 표현일 듯.


내 경우는 일일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챙기는 상사보다, 믿고 맡겨주는 상사가 더 잘 맞기는 했다.

물론 마이크로매니지를 하는 상사와도 일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상호 신뢰가 생겼고, 디테일함을 챙기는 정도가 조금씩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를 믿어주고 맡겨주는 상사의 신뢰는 직장생활에서 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리더십별로 달랐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또 쓸 기회가 있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최악의 리더십의 면면만 가지고 있던 케이스를 써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게 여러모로 고맙게 해 줬던 분이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내가 관찰한 그의 리더십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당시에는 인사부도 아니었고, 그가 내 직속상사도 아니었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었다.


가장 최악부터 보자면... 우선 제 때 결정하지 않았다. 직원이 100여 명 남짓이던 그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있던 사장이 하도록 되어 있었다.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부터, 회사에서 직원들이 쓰는 비품(볼펜 한 자루까지)을 구입하는 결정까지 모든 사항은 그에게 보고되고 승인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잘못되었을 때 책임소재가 무겁거나, 원망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의 결정에 대해서는 결정을 하지 않거나, 담당 임원에게 미루었다. 예를 들어 수입산 제품의 원재료에 관세가 55% 가 붙는 제품이 있었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돈이 남지가 않는 구조였고, 담당 임원은 이 제품을 수입하지 않기를 추천하고 제안했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제가 결정하도록 하지 마시고요" 였다고 한다. 근거는 이미 있었고(관세를 적용했을 때의 시장가격과 비교군의 비교) 결정만 내리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결정을 내리기를 망설였다. 이런 식으로 시부지기 시간을 놓쳐 사라진 또는 잊힌 수십, 수백, 수만 가지 결정이 있었으리라.

결정권자가 결정을 하지 않으면, 그 뒤부터 사람들은 일을 진행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 진행이 빨리 안된다고,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화를 가장 많이 내던 사람도 그였다.


두 번째는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 누구를 탓할까부터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그 '탓'의 대상에서 빠지는 단 한 사람은 바로 그 자신 뿐이었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영역에서 항상 생기기 마련인 문제에 대해 깨질 각오를 했어야 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거나, 예방하는 행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매일매일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서 문제 해결이 우선이 아니라, 누구의 잘잘못인지부터 찾아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도 해당이 되려나.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되고,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세 번째는 격려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못할 수는 없다. 누구든 어떤 일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서 잘 끝낸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수고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끝났을 때 그는 항상 흠을 찾기에 바빴을 뿐 그 일을 끝내기 위해 수고한 그의 직원들에 대한 격려나 공감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잘해야 본전, 못하면 나 혼자 책임져야 함"이라는 사고가 팽배했고, 누구도 나서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직원은 없었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자라거나 배운 부분을 찾아내어 지적하고, 고쳐야 발전이 있다는 것이었다. 매우 그럴듯하고 훌륭한 말이었으나, 서로 간의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이 훌륭한 뜻은 의심이 가득하고,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일 뿐이었다.


그에게 누군가 용기를 내어 제안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을 좀 더 해주심이 어떠냐"라고.

그의 대답은 "지금 하는 것을 봐서는 도저히 칭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일을 못하니 칭찬이나 격려를 할 수가 없고, 사기가 떨어진 직원들은 잘할 수 있는 일도 더 못하게 된다. 그러니 안 그래도 인색한 칭찬이나 격려가 더욱더 나올 수가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누가 먼저 끊을 것이냐의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흡사한데, 회사처럼 서열이 정해져 있는 조직에서는 대부분 리더가 먼저 바뀌고 탑다운으로 사람들이 바뀌는 게 더 빠르고, 쉽고, 자연스럽다. 회사에서의 영향력은 윗사람이 가지고 있고, 리더십의 경우는 그 말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리더'의 변화가 먼저임을 보여준다.


팀과 잘한 일에 대해 축하하고 격려하는 일은 특히 한국 문화에서는 어색할 수도 있고, 괜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리더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잘 한일을 잘했다고 축하해 주고 더 잘하도록 격려하는 일은 어떤 누구든 그 안의 잠재성을 끌어내는 최고의 처방이다.


네 번째는 "Lead By Example(본보기)"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장 단순한 예로 그는 근태관리에 매우 엄격했다. 외근을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사흘 전에 결제를 올려서 승인을 받아야 했고, 30년 경력의 경력직원조차도 신입사원을 대하듯 같은 방식으로 관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회사에서 유일하게 자신 혼자만 근무시간이 따로 없었다. 9-6인 근무시간이 지켜지는 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떤 날은(매우 자주) 점심시간 이후에 나오기도 했는데, 회사의 누구도 그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몰랐다. 아마 비즈니스 미팅이 있는 날도 있었겠지만, 이런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본인은 안 오면서 직원들에게는 시간 지키는 것을 강요한다"는 말이 흔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무드를 일할 때 가져오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사장의 기분이 좋은 날은 쉽게 승인이 나던 건도,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같은 건으로도 다른 결과가 나왔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말과 행동은 정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조차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게 했고, 사람들은 업무진행보다, 오늘 그의 기분이 어떤가를 살피는데 더 몰두했다.

불행하게도 이 회사와 롱텀으로 무슨 계획을 세우고 뭔가를 도모해 보겠다는 생각은 할 수 조차 없었고, 아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하루하루 퇴근시간만 기다리면서 제발 오늘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의 이러한 최악의 리더십 아래서, 그래도 회사는 돌아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들락날락해서 정신이 없었다.

일 년 내내 인터뷰를 보고 새 사람들을 고용했지만, 퇴사의 속도에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처럼 모든 회사일을 내 일처럼 하는 사람조차 "내가 왜?"라는 맘이 들게 하는 최악의 리더십임은 분명했으나, 그래도 회사는 돌아가고, 월급도 제 때 나왔다.


이렇게 최악의 리더십인데도, 그는 사장 자리를 5년이 넘게 6년 가까이 지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의 리더십을 최악이라 평가하고 고칠 수 있는 누군가나 장치(핫라인)가 없었다. 사장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매니저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본사의 사장이었다.

그의 직속상사가 현지법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그 자신뿐이었다. 어떤 일이 생기건 단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통로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외법인에서 어떤 일이 생기건 본사는 깜깜이였다. 커뮤니케이션의 통제는 그가 최악의 리더십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 년 여의 시간 동안 사장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로 보인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한다는 것은 그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일 뿐...


다음 문제는 그의 문제점을 본사까지 알려 문제를 고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싫은 사람은 회사를 떠나는 방법을 택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루하루 괴로우면서도 퇴사를 못한 사람들은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며,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에 떨면서, 그리고 그 지뢰가 터지는 곳이 제발 나한테는 아니기를 기도하면서.

막상 나갈 때가 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며 조용히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그 회사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충심으로 커뮤니케이션의 통제벽을 뚫고 본사에 보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악의 리더가 절대적인, 개인적인, 그리고 이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가 어떤 모습인지 나는 그 회사를 다니는 기간 동안 뼈아프게 경험했다. 벤처나 스타트업처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하기에는 회사의 덩치가 컸고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너무나 다양했다.


서로를 못 믿고, 업무가 중복되고, (사장이 믿지 못하고 같은 업무를 여러 사람에게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쳐갔다. 넌덜머리가 난 상태에서 회사를 떠났다. 나가서도 욕했다. 사람들이 다 한 목소리로 말하는 리더십의 문제, 그것은 모두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본사에서는 이러한 리더십의 문제로 결국 매출이 점점 나오지 않게 되자 6년째 되던 해에 드디어 새로운 사장을 보냈다. 그의 최악 리더십은 부임한 지 1년도 안되어 드러났지만, 그것의 결과가 실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그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더 빠른 결정이 있었을 것이고, 실적 감소에서 오는 부정적인 영향은 덜했을 것이다.


제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을 위한 자리가 리더십 포지션이다. 그나마 6년째라도 교체가 되었으니 그 회사는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 것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HR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리더가 회사의 장기적인 생존과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내일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회사의 생존에 직결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확신으로 굳힌 최악의 리더십이었다.


아, 마지막 하나가 더 있다. 보통 최악의 리더는 본인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점…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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