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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월 Jul 06. 2023

나의 신체상 - 잃는점.

비교의 목소리

살을 빼고 난 후에 삶은 외모지상주의인 한국에서 너무나도 달콤한 일상들의 나날이었다. 명동 한복판을 친구와 걷다 보면 쇼핑몰 모델 제안, 그냥 들어간 옷가게의 사장님이 무용을 하는 사람이냐는 오해, 롯데월드에서 즐겁게 놀다 보니 공익광고 모델의 제안, 그 모든 일상이 나의 외모중심적인 자존감에 엄청난 부스터 역할을 했다. 뭐든 너무 황홀하게 좋으면 그렇게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식단이 노력하지 않아도 쉬워지던 해, 나는 내 몸집만 한 각각 23kg의 이민가방을 끌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의 1500 kcal 미만 섭취는 식은 죽 먹기였고, 어떤 날은 칼로리 소비가 많이 없다면 500 kcal 미만을 먹을 때도 있었다.


"미국은 우유만 마셔도 살이 찐데"


악명 높은 미국에 생활의 살찌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올린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미국을 가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건강히 먹을 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의 나는 키가 조금 더 커서 167cm 정도의 키에 45-6kg를 왔다 갔다 하는 몸이었다. 다양한 인종이 있는 미국이라 태생적으로  다양한 체형들이 공존했다.


내가 다닌 미국 국립고등학교는 95% 이상의 인종이 백인이었는데 그들의 미의 기준에 나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희한한 얘였다. 한국에서 종종 각광받던 외모의 칭찬은 온데간데없고 건강미 넘치는 애플힙과 축구도 공부도 잘하는 까무잡잡한 언니들 사이에 나는 한 없이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깊고 좁은 친구들을 만들기 좋아하던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이미 본인들의 일상들이 오랫동안 보존된 친구들 사이에 틈을 비좁고 들어가긴 너무나도 힘들었고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는 내내 칼로리를 계산하는 목소리가 내 뇌를 혼잡하게 했다.


하루는 영어 문학 수업이었는데 점심시간까진 2시간이 조금 안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미 저체중으로 내 몸은 38도를 육박하는 더위에도 땀 한 방울을 흘리지 않고 추워했으며, 영양분이 부족한 머리카락은 하루가 무섭게 매일같이 우수수 빠졌다. 하루에 먹은 게 없어서 힘이 없었고 퍽하면 에너지 절약모드로 잠을 자던 나는 수업 중에 아몬드라도 몇 개 몰래 꺼내먹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우스운 일인데, 그 아몬드 몇 개를 내가 정한 시간인 점심시간이 아닐 때 먹으면 나 스스로가 너무 늘어지고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먹을까 말까, 먹으면 하나만 먹을까 두 개를 먹을까. 하나 먹고 눔 (Noom) 어플에 "아몬드 1개" 칼로리를 기록해 놓곤, 곧이어 또다시 아몬드 한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다시 먹고 기록하고를 반복했다. 수업 종이 칠 때까지 나는 고작 아몬드 때문에 수업에 집중도 못하고 그렇게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그때 즈음에 나는 칼로리 카운팅을 멈추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숫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했으며, 그 시기 즈음 새로운 목소리가 내 뇌를 복잡하게 했다.


하교시간에 어떤 마른 학생이 앞서서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걸 봤다. 나는 그 친구를 쳐다보며 '내가 저 친구만큼 마를까...' 생각했다. 그건 더 마르고 싶은 욕구였을까 저 친구만큼은 마른 게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이었을까. 나는 거울 속에 나는 더 이상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던 터라, 내가 보는 제삼자를 두고 비교를 통해 나의 몸을 평가하였다. 미국을 가기 전에는 늘 곁에 있던 언니한테 "언니, 내가 저 사람보다 말랐어?"라고 질문하곤 했다. 언니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해 주곤 했는데, 언니가 부재한 미국에서는 내 뇌릿속에 그 질문과 대답을 해주는 괴물 같은 목소리를 만들었다.


그 비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만의 "철칙"들을 새워나가며 얻는 것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 나는 점점 잃어가는 것이 늘어갔다.


- 어느 건물이든 엘리베이터 이용은 금물. 계단만 사용.

- 화장실을 들어가면 틈틈이 스쾃 하기.

- 배고픔을 느끼면 물부터 500ml 마시기.

- 주 2-3회 줄자로 팔뚝, 허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굵기 재고 기록.


점점 말라가는 줄도 모르게 어느 순간 보니 나는 168cm 41kg (그래도 자세교정과 운동을 열심히 하니 키는 컸다). *BMI 지수는 14.53, 정상범위에 한참을 벗어난 수치였다. 그렇게 나는 더 얻고 싶은 욕심, 간절히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 수많은 다른 목소리들로 인해 나의 머리카락, 온기, 스스로를 다독이는 용기, 그리고 나를 잃었다...


*BMI 지수: 신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BMI, 카우프지수)에 의한 비만도 계산법


*본 글은 어떠한 식이장애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시각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신체의 이미지나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봐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유난히 힘들었던 미국에서의 어느 날 아침, 지금 읽어도 참 따듯한 친구의 진심이 깃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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