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촬영기
식당을 하다 보면 낮에 오는 전화는 "손님이 길 물어보는" 아니면 "광고 홍보 전화" 두 가지.
전자는 먹고사는 문제이니 아무리 바빠도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이 맞지만, 두 번째 전화는 아무리 한숨 돌리는 시간이라 해도 '나도 사람인지라' 친절하게 받아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끊지는 않겠지만 두어 마디 이후까지 용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통화를 안 하게 된다. 그런 전화만 오는 하루가 있다. 손님도 없는 날 말이다.
11월 초 하루도 그랬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였다." 저 여기는 엠비씨 인데요" 그다음 말은 안 들어도 안다.
잘 나가는 음식 홍보 프로들 이름을 대면서 갑자기 섭외를 하게 되었다는 전화. 처음 초짜시절에는 ' 아니 우리 가게가 벌써 알려졌나? 누가 아는 사람이 있었나?' 하는 마음에 통화를 끝까지 하다가 마지막 즈음에 "저 그런데 촬영 시 취재 협조비로 500만 원이..."라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아 홍보대행사 구나'라는 결론에 닿는다. 물론 돈 내고 촬영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도 충분히 고지할뿐더러 그만큼의 효과가 있으니까 맛있는 티브이를 찾아서 기행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11월 걸려온 전화도 그랬다. 그래서 바로 끊으려 했는데 , 전화를 걸어오신 여자분이 "잠시만요 저희는 천원도 안 받습니다" 그랬다. 천 원이라는 소리에 멈칫하면서 신뢰가 가는 것이다. '백원도 아니고 만원도 아니니까 ' 천 원.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아는 프로였고 , 콘셉트를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할매식당 이라고 나이 드신 할머니가 하는 식당이고 , 경력이 오래되신 분을 찾아요"
"저 저희는 여기서는 장사한 지 얼마 안 되고..."
"어머님 경력이 어떻게 되세요?"
이야기를 전화로 정리하고, 내부 회의 후 촬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 촬영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고 , 그 기간 동안 나는 어머니께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말하지 않고 동의를 얻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말하게 되면 분명히 안 하신다고 하실 분이다. 그러나 막상 하게 되면 잘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부정확한 현실을 만나게 해 드리는 것'으로 이 촬영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가님께 촬영 일자를 듣고 그제야 말을 전했다.
"엠비씨 에서 촬영하자고 합디다."
"안 한다. 멀 그런 걸 하자고 하냐."
"나중에 손자가 볼 것 같은데? 할머니 티비에 나왔다고 하면 좋지 않을까?"
나는 좀 비열한 아들이었고, 아직 똥오줌도 못 가리는 내 아들을 볼모로 삼아 이 촬영허락을 받았다.
촬영 날, 약속대로 아침부터 음식 나르는 영상, 손님맞이하는 영상 등등 몇 번의 촬영을 거쳤다.
손님들께 양해받는 것이 가장 어려운 미션이었지만 , 단골분들이 흔쾌히 응해줘서 좋은 그림을 금세 얻을 수 있었다. 오후에는 할머니 식당의 할매 ' 어머니' 혼자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는 신이 있었다.
한 5분 정도면 끝날 분량이다. 질문도 몇 개 없었고 , 나는 카운터 옆에 서서 '아 , 피디님 점심을 짜장면을 시켜드려야 하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촬영이 길어졌다. 자꾸 반복해서 한 부분을 돌리고 있다.
"저 할머니는 언제부터 이 가게를 하셨나요? "
"네 그러니까 저는 89년부터 가게를 했는데요, 망하기도 많이 망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그럼 꽃게집은 언제부터 "
"네 그러니까 제가 경력이 30년이 넘는데요 , 제가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
질문과 답이 묘하게 어긋나는 시간이 반복되는 중. 뒤에서 지켜보다가 어쩔 수 없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 어머님 말씀은 식당일을 시작하신 건 89년이 맞는데요, 그 이후에 자기 식당을 운영하시다가 imf전에 다 망해서 그 이후에는 쭈욱 남의 집 일을 하셨어요. 조리장으로 계실 때 게장을 처음 개발했는데, "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머님. 저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저도 작가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
어머니, 그러니까 오늘의 주인공 할매식당의 할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입에 힘을 주고 있었다.
피디를 잠시 밖으로 불러냈다.
"저는 왜 저러시는지 알아요. 어제 저하고 미리 사전질문 이야기 하실 때, '남의 식당에서만 일한 거를 방송에 이야기하면 너무 인생이 창피한 거 아니냐'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아무래도 좀 그러신 거 같아요 "
"아 네 , 그럼 이따가 다시 짧게 할까요?"
방송촬영을 하기 전, 그러니까 어머니의 식당 이야기 푸념을 듣던 며느리가 좋아하는 스토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상계동에서 일할 때였는데 , 그 집 사장님이 그 큰 가게를 하면서도 한 번도 주인행세 한다고 주방에 간섭하고 그런 거 없었어. 참 젠틀하신 분인데 , 어느 날 '실장님, 우리도 간장게장을 해보고 싶은데 실장님이 한번 해봐 주시겠어요?'라고 하면서 한마디 더 하더라고.' 실장님 , 재료 걱정이나 돈 걱정은 절대 하지 마시고 그냥 해주세요. 제가 주방일은 모르니까 실장님만 믿습니다.' "
간장게장은 한 마리 원가가 몇만 원까지 가기도 한다. 그 큰 게를 몇 짝씩 , 그러니까 한번 테스트할 때마다 기백만 원씩은 깨지는 주방에서의 메뉴개발. 어느 산으로 올라갈지 모르는 등반 같은 것.
"그래서 밤에 집에도 안 가고 가게 한구석에 방석 이어서 깔아놓고 자다가 깨서 새벽에 간장 맛보고 시간 재고 그렇게 해서 만들었어 생각해 봐. 나한테 그렇게 돈을 믿고 쓰는 사람이 어디 있더냐. 사람이 믿어줬으면 그만큼 해야지"
"지금 그 사장님은 어디 계세요? 한번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짐짓 장단 맞추며 물어보자,
"장사 다 정리하시고 미국으로 들어가셨지. 아들이 아파서 챙기러 가셨다고 하던가"
며느리는 이 이야기를 참 좋아라 했다. 다른 성공 이야기는 성공의 공식이 있는데 , 별거 아닌 인연에서도 탄생 설화가 나오는 것 같아서 , 어머니가 혼자서 남의 집 남의 식당 떠도는데 그 한데서 먹고 자고 한 이야기 속에도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보상받으시는 것 같다고 말이다.
하긴 , 다른 가게에서 이야기들은 모두 슬프게 , 혹은 초라하게 끝나는 것이 식당일 하는 찬모들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영화종합촬영소 앞 만두집에서 레시피만 다 빼앗기고 쫓겨난 이야기, 장사하는 동안 사장이 '나중에 잘되면 여기 뒤에 땅을 좀 나눠줄게'라고 헤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 받아가며 일했더니 기껏 그 땅 팔아 사장 아들 가게 내어주는 모습을 보던 일. 머 찬모 주제에 무슨 항의를 했겠는가. 그렇게 40대 아줌마에서 70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주방의 뜨거운 그릇들과 기름때에 절어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나 맑은 공기 마시는 삶을 사셨는데 말이다.
인터뷰는 이어졌다. 피디는 질문을 짧게 잘라서 이어갔고 , 어머니는 결국 '남의 집살이'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면서 마무리했다. 전문가들이니까 알아서 잘 이어 붙이고 잘라 붙여서 "말같이 만들어서 " 내겠지.
어머니 인생이 그러했다. 말 같지 않은 삶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이렇게 다리 아픈 할매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방송이 나가고 난 후, 알리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은 이모는 "왜 수십 년 전에 이혼한 형부 얼굴이 나오는 거냐, 그리고 왜 엄마 허리가 저렇게 굽어있어"
"사진이 모두 물에 떠내려가서 지갑에 딸랑 처녀 때 전후 사진 저거 하나 남았다고 하드만. 이모가 이해하셔.
허리 굽은 건 방송국 놈들이 할매로 둔갑시켜야 하니까 그런 거 아녀. 제목이 할매식당이니까 ."
방송국이 잘못한 건 없지 뭐. 할매 맞는데 자꾸 할매 안 하려고 하는 엄니가 문제지. 심지어 방송에서 나이도 속이려고 하셨더구먼 , 두 살이나 내려서 이야기하시고 말이지. 그러니까 허리 굽은 사진을 쓰지. 죗값 받은 신겨.
일상은 변한 것이 없다. 식당 일 하라고 태어나시지는 않았던 그 청춘이 멋들어지게 영등포에서 찍은 양장입은 사진에서 지금 할매가 이 시절까지 , "아들 때문에 하는 거지요 " 그 말 하나 앞뒤 자른 거 없이 하고 싶은 말 말 하신 거 같은데 , 그 말은 편집 없이 나왔다. 당신의 삶은 어디다 두고 사셨는지 당최 모르겠는데 , 남 때문에 남 밥상 차려주는 일만 저리 하고 사신 인생이다. 어디에다 포커스를 두고 존경해야 할까 지금부터 고민에 빠진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저 할매에게서 분리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지금도 이렇게 고민이다.
분리불안장애 같은 것인데, 시간이 지나 분리되는 그때가 오면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저 슬픈 굴곡을 어찌 내가 다 기억하고 살 수 있을까.
광고 전화를 받았다. "저 맛집 방송하신 것, 그 사진을 만들어 드립니다."
이번에는 광고전화를 길게 끝까지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 액자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음식 사진 몇 개 빼고 , 할머니 사진을 몇 개 더 넣어 주세요. 얼굴 좀 안 늙어 보이게 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