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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을 따라 배우다.

장사 안 되는 날 추스리다

by 밥 짓는 사람


오늘은 최저 매출 신기록을 달성할 뻔한 날이다. 방금 전 주문으로 최저 매출보다 500원 더 나왔으니 그 기록은 역시 깨기 어려운 수준인가 보다.


오늘은 사실 내 탓은 아닌 것 같다.


아침부터 눈 비가 쏟아졌고, 평일 매출 중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수요일, 그리고 오늘이 대보름이란다. 그러니까 명절보다 우리 가게가 불리하다는 '나물 먹는 날'인 것이다. 가게의 주 고객층인 고령층 손님들이 오늘은 집에서 나물로 식사를 하실 것(?)이다.


그렇게 이유들이 명징하게 나왔으니 오늘 매출은 내 탓이 아니다.


그렇게 위로하면서 그래도 보람된 낮 시간을 보냈다. 고생 끝에 반년이 넘게 걸린 어머님의 치아 수복을 위해 치과도 다녀왔고 , 은행 업무도 봤다. 식자재 마트에 들러 가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식자재도 샀다. 알차게 하루를 보낸 것 같지만 , 나는 오늘 하루 망했다.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하루 더 지나면 주말이고 , 그렇게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면 170000개의 폐업 숫자에 나도 1을 더하게 된다.


모두 다 어려우니 나도 남 탓이나 하고 , 날씨 탓이나 하고 그렇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머 대단한 가게를 한다고 하늘이 점지해 주는 손님을 마음대로 채우려 하는가.


가게를 열고 초반, 이렇게 손님이 없는 날이 많았다. 안착하기 , 익숙해지기.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단어인지 몰랐다. 심지어 내가 오늘 장사가 어려운 날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나는 그럴 때, 큰 도움을 받은 "야구 이야기 한토막" 이 있었다.


엘지 트윈스의 박용택 선수, 은퇴했고, 엘지의 영구결번이었고 , 타격왕이다. 그렇게 잘난 선수의 어떤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을까.


2000년 초반 엘지 유니폼을 입은 박용택에게는 천재라는 수식어만큼 많이 언급된 이름이 있다. "스윙벌레" "훈련벌레" 뉴스에 언급된 일화들만 모아놔도 그가 연습에 특화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 모든 프로들이 연습을 게을리하는 경우는 없으니 ,


나는 직접 다른 선수에게 들었던 일화가 있었다. 엘지가 이긴 날, 다음날 경기가 있어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온 저녁. 박용택은 잠이 안 온다고 다시 내려가서 빈 공터에서 스윙을 했다고 한다. "이긴 날은 이긴 감이 있으니까 스윙을 해서 마인드 컨드롤을 하고 , 진날은 아주 사소하게 영점(?) 이 안 맞으니까 스윙을 계속해서 내 스윙을 찾아놓고 그 둘의 차이는 사실 공 반개도 안될걸"


평범한 이야기였다. 동전 맞추기 같은 진기명기도 아니고 , 연습을 많이 해라.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박용택은 언제나 " 지금 경기를 해도 기본은 할 수 있다 " 같은 상태를 유지해 주는 선수였다.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손님이 많은 날처럼 똑같이 '익숙하게 별다름 없이'를 유지해주려고 한다. 그래야 중간에 들어온 손님이 달라진 온도를 느낄 수 없을 테니, 늘 이 가게 온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니.


큰 성공은 기대 못하고 산지 오래되었다. 개업하고 4일 후 코로나, 지금은 19년 만에 자영업 최악의 수치. 내 목표는 정말 소박하고 단순하다. 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몇 년이라도 손님을 잘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50살 신입으로 뛰어든 이 바다가 이렇게도 지독한 레드오션일 줄은 정말 몰랐다. 헤엄치기 정말 힘들지만


야구라도 놓고 배워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까 생각 중이다.


사실 박용택은 너무 잘해서 얄미워서 그다지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다.


왠지 정이 안 가는 스타일인데, 어쩌면 내가 그렇게 못 살아와서 그런 모습을 동경하면서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스윙하는 것 하나라도 흉내 내보려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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