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곡동 마니아 우동
오늘 주문한 메뉴는 비빔국수와 김밥. 어릴 때는 이 메뉴에 어떻게 소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머 이 메뉴만 그랬겠는가. 라면 한 그릇이면 소주 두어 병. 심지어 끓이지도 않은 라면으로도 술안주 삼아 그렇게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시간을 깨부수어 먹고 그랬는데 말이다.
중곡동 복개천 끝자락 사거리. 이 동네는 그러고 보면 참 개발도 안 되는 동네다. 동일로 길가에 있는 낡은 아파트 중에는 연탄보일러를 때던 흔적이 남아 있지를 않나. 그 옆 골목에는 일제강점기 주택같이 담벼락 낮게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막다른 골목에 막힌 길이 남아 있기도 하고. 여인숙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런 집들도 있다.암튼 지금 서울에서 창신동 , 상계동 백사마을 같이 재건대가 있던 시절 만들어진 동네처럼 생겨먹었다. 중곡동 아래쪽이 말이다. 복개천을 양쪽으로 정신병원 쪽은 집값이 조금 높아서 사람들이 아랫동네를 업신여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뭐 이런 곳이 있던가 '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서울 이곳저곳에서 유랑하면서 살다 보니 어디 가나' 업신여김의 미덕'은 존재하는 것. 잘 사는 아파트에 가면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는 차에 따라 혹은 살고 있는 평수에 따라 '너 쟤랑 놀지 마'가 생기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름만 고급 오피스텔인 주거시설에 가면 1층 편의점을 갈 때 걸치고 가는 옷으로도 계급을 나눌 수 있는 것. 그러고 보면 나눈다라는 것은 사실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살기 위해 서로 감내하고 사는 일종의 표식 아닐까. 똑같은 등급과 색으로 칠해버리면 반동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니 생산성이 떨어진다. 머 그런.
암튼 중곡동 국숫집 이 길 앞은 참 변하지도 않는다.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대충 2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여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살고 있던 집은 아무 세간살이도 없는 반지하. 그 나이 청춘에게는 상당히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이었는데 , 얼마나 긍정적인가 하면 '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일 수 있으니 좋다.라고 생각했다. 불필요한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입사한 회사에서 처음 들은 이야기는 "너는 지금 휴학 중이니 고졸 대우를 받는 것, 그리고 한글 타자 이외에는 회사에서 너를 써먹을 수 있는 아무런 재주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회사가 너에게 봉사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배려하는 시간 동안 열심히 해라. "
it회사였다. 쇼핑몰 설루션을 파는 회사. 보고서를 내라고 하는데 '파워포인트'로 내라고 한다.
그게 먼지 처음 들었기 때문에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으로 회사 지하 서점으로 가서 바로 39000원을 주고 "파워포인트 정복"이라는 책을 샀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한 권 더 샀다. "임요환의 드랍쉽"
자취방에는 티브이도 없었고 , 컴퓨터도 없었다. 아직 월급을 받기 전이기 때문에 새로 세간을 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 파워포인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거금을 들여 길 건너 피시방 야간 정액을 끊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파워포인트를 공부했고 , 주말 내내 피시방에서 공부한 덕택에 '보고서' 한 장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 회사는 보고서를 낼 때 서류판에 사표 도 같이 내는 것이 일종의 문화였다. '생즉사 사즉생' 같은 것인가.
나는 그 피시방을 애정했다. 무려 프린트도 15원. 잠시 시간을 멈추고 나와 배가 출출할 때는 이 국숫집으로 와서 국수와 소주 한 병. 다시 들어가서 아침이 될 때까지 일을 하고 나오고 , 아침 해가 뜨고 집으로 들어갈 때는 칙칙한 지하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냥을 마친 들개가 굴에 들어가서 아늑하게 쉬는 ' 머 그런 자뻑하는 칙칙한 생각을 했다.
회사 출근은 오전 다섯 시 반. 마을버스 첫차를 타고 회사에 도착해서 다시 돌아올 때도 마을버스 막차.
머 별로 할 일 없으면 회사에 앉아서 일을 빙자한 노닥거림도 좋을 때였으니 그 마음속에는 " 나는 꽤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한 달 월급 받고 나면 다음 달도 일해도 되는 수준이었겠지. 가끔 쉬는 날이 되어 정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는 집 앞 만화방에 들어갔다. 24시간 정액을 끊고 하루종일 고행석 만화를 보고 저녁이 되어 나와 국숫집에 들러 국수와 삶은 달걀. 그리고 소주 한 병.
그 가게들은 사라졌는데 , 다행히 이 동네는 재개발이 안 되는 동네라서 건물들은 그대로 있다. 대충 그때 그 가게들을 기억할 수 있게 낡았다. 고향 같은 게 어디 있겠냐. 서울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배곯지 않고 살아온 세대인데. 그래도 좀 길게 가난하게 살았던 곳이 고향같이 생각된다고 하면
중곡동이 그래도 고향이다.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이때 가난함에는 재미가 있었거든.
하루를 좀 낭비해도 내일 여유 같은 하루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추억스러운 동네다.
그러고 보니 추억 보정이 좀 있었다.
그때 다닌 회사는 몇 달 안돼서 그만뒀다. 나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과 달랐나 보다.
파워포인트는 사실 저렇게 치열하게 배운 수준은 안된다. 천성이 게을러서 손도 머리도 좀 느리다.
국숫집이 그때 그 집은 맞는데 , 그때는 이 가게보다 좀 작고 사장님 혼자 하고 그래서 ' 이 국숫집도 얼마 못 가겠구먼 쯧쯧. 나라도 팔아줘야지 '라고 생각했던 가게였다.
나의 인생은 계속 망해갔고 , 국숫집은 이렇게 길게 살아남았다. 내가 동정받고 사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