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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치찜

청평 첫 집 낚싯배

by 밥 짓는 사람

그러니까 이 생선요리를 소개하려고 생각해 보니 , 음식 자체가 그다지 친절하지가 않고 민물 생선이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민물에서 잡히는 대부분의 생선이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종류이지만 , 드물게도 아니 역설적인 어종들인데 , 하천에서 많이 잡히는 커다란 생선은 오히려 먹을 수 없는 어종이다. 그중 이 생선 누치는 잉어와 매우 유사한 생김새, 어류생식 도감이 아닌 글이니 무슨 종 무슨 목 이런 설명은 생략하자. 그냥 잉어 사촌이다.


아버지에게 1년에 한 번 정도는 "낚시 한번 가시지요. 이번 낚시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라고 전화를 하면

"야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라는 인사말을 듣는다. 이어지는 말. "차는 한대로 갈 거니까 터미널 쪽으로 나와" 아침 일찍 아버지와 만나서 터미널 옆 김밥가게에서 김밥 두 줄. 천하장사 소시지 같은 것 두어 개. 생수 몇 병 , 그리고 내가 마실 소주 두어 병.


아버지는 견지낚시만 배웠다. 다른 낚시는 기다리는 동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배우다가 실패했다는 웃지 못할 말을 하시는데, 평소 술 드시는 모양새로 보면 영 없는 말은 아니다. 아무튼 아버지는 견지낚시만 하셨다. 덕분에 나도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견지낚시를 배웠다. 그때는 팔당댐 아래에서 배를 타고 낚시를 할 수 있을 때여서 주로 그곳에서 낚시를 했다. 지금 경정장이 있는 곳은 여울 같은 곳으로 수영을 해도 좋은 곳이었다. 낚시 결과가 서운한 날에는 그 여울가에 배를 대 놓고 나는 수영을 , 아버지는 몇 마리 잡은 잡어들을 불에 구워 소주를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청평으로 가는 길 청평대교 가기 전 오른쪽으로 첫 집이라는 표시가 있고 , 강가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예전에 한강에는 참 많았던 낚시 뱃집이었는데 , 한강이 상수원 보호구역이 되고, 정비가 되면서 거의 다 사라지고 이 집 하고 두어 집 정도만 남았다. 저 멀리 청평댐이 보이고 , 그 아래 물이 깊어지고 흐름이 묵직한 곳. 그곳까지 배를 이끌어 준다. 예전에는 직접 배를 저어 강 가운데까지 갔지만 , 지금은 시간도 줄이고 사실 배를 저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남자들이 몇이나 남았겠는가. 이리도 원시적이고 , 따분한 취미인데.


배를 고정시키고 미끼통을 던져 물고기를 부른다. 집어 라고 하는 작업인데 , 낚시라는 것이 사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는 참으로 비 효율적인 놀이 이기는 하다. 예전에 낚시 방송에서 수중 카메라로 미끼를 뿌려놓고 낚시 바늘 근처로 오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 정말 수십 수백 마리의 고기가 근처를 떠돌다가 미끼와 먹이 사이에서 고민 끝에 미끼를 물더라. 그러니 낚시는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기다리는 것 이 맞다.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낚시가 취미시네요"라고 물으면 선문답 하듯이 " 기다리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그런 연유 일 것이다.


그렇게 미끼와 먹이 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 그 와중에도 나는 먹이 주기만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덜컹 거리는 손맛을 느끼면서 저 작은 대나무 견지대로 어른 팔뚝만 한 생선을 낚아 올리고 있다. 손맛이 좋을 때는 정말 덜컹하는 순간이 오는 낚시가 이 배 위에서 하는 견지낚시다. 오늘도 아버지는 수십 마리를 낚아 올렸다.

어창에는 반나절 낚시를 했는데 이미 커다란 누치들이 그득하다. 시계를 보니 점심 먹을 시간이다.

예전 팔당댐 낚시를 다닐 때는 점심도 배 위에서 먹어야 했다.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은 고체연료 버너.

쉿 쉿 소리가 날 정도 펌프질을 해주면 갑자기 푸른 불길이 솟아오르는 버너에 코펠을 올리고 이백 냥 라면을 두 개 올려서 끓여 먹고 하루를 나던 오래전 기억. 이제는 점심시간이 되면 첫 집에서 식사를 판다. 배를 끌어가기도 하고 옮겨 타기도 하는데 물이 거칠지 않으면 배는 그대로 두고 사람만 옮겨온다. 누치 몇 마리와 함께.


천막 옆으로 들어가면 벌써 밥상이 차려져 있다. 나물 그리고 콤콤한 김치. 김치로 식당 주인의 고향을 맞춘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 이 김치는 그냥 이곳에서 콤콤해진 묵은 김치다. 고향이 어디 있는가. 매일 물 흐르는 곳에서 다 내버리고 사는 이렇게 기가 막힌 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남기겠는가.


누치찜이 나왔다. 밑에 감자가 몇 개 무가 얇게 깔리고 누치가 지져져 있다. 그렇게 큰 몸뚱이라서 그런가 반갈라서 눕혔는데도 누치만으로 냄비가 꽉 찼다. 그 위에 묵은지를 덮었다. 매운 고추와 된장 그리고 비린내를 잡겠다는 연유로 고추장을 사정없이 넣어 끓인 누치찜. 살을 거 벼내 보면 이 누치찜은 참 거슬린다. 살을 좀 잡을만하면 가시다. 고등어처럼 가운데 두꺼운 가시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아. 누치는 가운데 가시는 생각보다 별 볼 일 없고, 양쪽에 그만큼 가시가 또 있다. 그러니 살이라도 한 덩이 들어내서 그릇으로 가져오면 가시 바르다가 세월 다 간다. 그리고 아무리 양념을 콤콤하게 진득하게 눌러 끓여내었어도 강 물고기의 흙맛은 좋아하는 사람 말고는 딱히 환영받기 어렵다. 나는 양념만 슬쩍슬쩍 밥에다가 올려서 빠르게 밥을 비워나갔다.


생선살을 바르다 보니 문득 이 번거로운 생선이 참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허세로운 덩치는 있는데 육식어종처럼 이빨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잉어니까 물지도 않고 그저 흙바닥 성실하게 빨아들이면서 사는 생선.

살이라도 그득해서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생선이 되면 좋으련만, 집안도 찢어지게 가난하고 , 암튼 그런 류의 이야기로 살 사이에 그득하게 껴버린 가시. 다 발라내고 나면 별거 없는 생선. 게다가 흙맛은 절대 빠지지도 않게 생겨버린 유전되어 오는 가난. 흙맛이다. 아무리 양념을 발라서 아닌 척을 해도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흙맛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흙맛이 좋네"라고 위로하면서 그런 척하고 사는 것. 암만 봐도 누치 같다.

나는 그 살 맛이 싫어서 양념으로만 밥을 다 비웠다. 보청기를 빼고 있으면 남에게도 말을 잘 안거는 냥반이기에 밥을 다 비우고 강가 쪽을 보고 있었다. " 야 인마 왜 이 아까운 살들을 다 못 먹고 말이야. 깨작대고 말아"

"에이 이게 먹을게 뭐가 있어요. 잉어들이 다 그렇지. " " 야 인마 잉어과가 원래 손질 잘하면 고급스러운 물고기야" " 에이 누치는 아니죠. 이건 뭐 그냥 가난한 생선이지"

우리는 가난한 생선을 마주 보고 가난한 식사를 마쳤다. 가난한 볕에 앉아서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연기 흐르는 쪽에 앉아 물었다 " 근데 윤 씨는 잉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야 인마 그건 양반 족보에서나 나오는 말이고 , 우리 집은 다 땀 흘려서 먹고사는 남자들뿐인데 그런 거 상관없어" " 먹으면 큰일 난다고 하던데요"

"지금 사는 거보다 더 큰일이 있겠냐. 그런 말 듣고 사는 것도 한눈팔 여유가 있어야 되는 거다"


누치 같은 말이다. 저렇게 말은 하면서 평생을 징크스에 발을 걸고 살아오신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택시 운전하시니까 , 다른 직업은 없이 살아왔으니 , 그 정통성에 발맞춰 '아침 첫 손님은 여자는 안된다.' ' 동전지갑 마지막 오십 원짜리가 낡은 돈이면 안된다' ' 쉬는 날 세차하러 갈 때 붉은 수건은 안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이런 이야기가 몇 가지인데 , 누치처럼 참 속 복잡한 분이다. 겉으로는 참 수염도 근사하고 대범해 보이는데 말이다.


누치찜이 생각났다. 이 저녁 ' 내 아들 ' 기저귀를 갈면서 , 낚시를 가르쳐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던 중에 누치찜이 그렇게도 생각났다. 그 흙맛이 , 그 바짝 마른 어창 냄새가 생각났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면 과연 흙맛을 이해할까. 너는 흙냄새도 안 나게 키우고 싶은데

나도 누치처럼 가시도 많고 맛도 별로인 사람인데, 너는 좀 아니면 좋겠다.

갑자기 주저리주저리 이렇게 수다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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