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냄새
요즘은 언제 동전을 쓰겠는가. 나는 코인세차장에서 가끔 오백 원짜리 동전을 써보곤 한다.
그 외에는 동전을 만질 일이 없기도 하고, 현금 자체를 쓰지 않는 상황 아닌가.
또 아주 오래전 냄새가 생각나서 끄적인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했던 동전 냄새는 50원짜리.
아침에 아버지 차가 출발하기 전, 바짝 마른 돈지갑(청카바로 만든 것 같은 재질이었다. 점점 낡아갈수록 멋들어진 천이었다. 천막 같은 것인가? )에 지폐와 동전을 채워 출발하던 모습. 그때 그 돈지갑 앞쪽에서 나던 깨끗한 쇠 냄새. 그 냄새다.
늦은 저녁, 가게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 가족들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베란다에 오늘 입었던 잠바와 바지를 걸어놓는다. 두 가지는 매일 세탁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냄새는 털어내고 입어야지 하고 걸어놨다.
아침에 베란다를 열어보니 보리굴비 쩐 내와 된장 냄새. 그리고 하루종일 쌓인 밥냄새가 난다.
어젯밤에 샤워를 하고 자긴 했는데 , 저 냄새가 나에게서 계속 날 것 같다. 사실 나는 괜찮은데 아이가 문제다.
아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아이가 얼굴에 침을 묻힌다. 치아도 없는 주제에 어~ 하고 입을 가져다 댄다.
아이의 침은 무색무취. 아니 사실 내 아이니까 조금 의식 보정을 해서 "참 좋은 냄새"가 난다.
물론 내 생각이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아침부터 아이에게 애정을 구걸하면서 얼굴을 비빈다. 이때 드는 생각. 아이가 나를 냄새로 기억하게 되면 첫 기억으로 생선 냄새를 주게 되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는 무슨 냄새였지?". 담배도 태우시고 , 술도 매일 드시고 , 차를 몰고 하루종일 돌아다니시니 아버지는 곱고 고운 냄새가 날리 없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서의 그는 '무색무취'였다. 물론 무색이라고 무취라고 해서 아무 기억이 남지 않을 리는 없다. 아버지가 나를 앉혀놓고 술안주를 만들 때의 모습에서
"싸구려 덴뿌라가 간장에 조려지는 냄새"로 하루가 기억나고, 논두렁에서 스케이트를 가르치겠다고 억지로 스케이트를 신겨놓고 정작 별 관심 없는 것처럼 논두렁 옆에 깡통불 피워놓고 고구마나 굽고 있던 모습에선 "고구마 아저씨 같은 냄새"도 나고 다른 집 아빠들과는 다르게 신기한 취미가 많으셨던 분인지라 어느 한날은 직접 잡아오신 꿩을 손질하던 모습에서 " 납이 녹는 총알의 냄새"도 나는 분이었다.
그 어느 냄새를 선택해서 "냄새 초상화"처럼 기억해 볼까 해도 복잡 다난해서 그런지 한 가지를 딱 집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도 젊은 아빠였으니 아들을 데리고 참 이것저것 다양하게 했다. 물론 그 와중에 필수 코스 같았던 면도와 넥타이를 빼먹은 것을 보니 "참 자기 멋대로" 하시는 분 맞다.
내 아들에게 이쁜 향을 건네주고 싶어서 차 안 청소를 할 때면 가죽클리너를 쓰고, 공기도 담뿍 새것으로 담아 채우고 , 집에서도 다이얼 비누로 빠득빠득 닦아서 가급적 남는 흔적 없는 냄새를 전해주고 싶은데 ,
마음 같지가 않다. 생선 냄새가 피부에 슬쩍 붙어서 잘 안 떨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소한 바람은 아들도 나처럼 냄새에 예민하지만 냄새에 관대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 나는 나쁜 냄새를 맡게 되면 냄새의 조합을 풀어내보기도 하고 , 냄새에 이야기를 붙여 보기도 한다. 냄새에 겁을 먹지 않으려 말이다. 내가 물려줄 것은 거의 없겠지만 이런 사소한 기능 하나를 공유할 수 있으면 돈 몇 푼보다는 도움 될 것이니 말이다.
나도 다행히 아버지 인지 어머니 인지 모르겠지만 '생선 냄새, 된장 냄새, 음식 찌꺼기 냄새'에 매우 특화되어 거부감이 없는 후각을 받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특정하는 것은 "어머니는 지금도 생선이라면 질겁하는 분'이라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있으니 이 모든 덕은 아버지 아니겠는가.
동전냄새가 기억나는 것은 그 아침에 출발하는 포니 택시 앞에 서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뇌리에 "참 좋게" 각인되어 있음이 아닐까. 아니면 , 그 이후 결별을 먼저 선택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와 같이 산 날이 거의 없다 보니 , 이때쯤 의 기억이 지금의 아버지의 흔적처럼 몽타주처럼 결정하는 중요한 모습이 아닐까 해서 "동전냄새"를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런데 , 말은 이렇게 하는데 " 그 동전냄새"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포니 택시도 없어졌고, 20대의 아버지도 없어졌고, 택시 앞쪽에 걸어놓던 동전가방도 없으니
그냥 내가 기억하는 말로만 이 냄새가 좋다고 얼버무리고 마는 거지.
"아침, 시동 걸어놓은 택시 안에 조수석에 앉으면 앞쪽에서 나는 차 냄새 사이에서 나만 기억하고 있는 동전 냄새"라고 말이다.
내 아이도 내 생선냄새에게 아주 조금만 친절했으면 좋겠다. 나처럼 거짓으로라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