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아름다울 리 만무하다.
나쁜 습관인데, 좋았던 일은 곱씹고 챙겨 놓고 , 껌종이 하나라도 남겨 놓고 액자에 걸어놓는 편인데, 나쁜 일은 기껏 모든 흔적 지웠다고 해놓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 소주 한잔이라도 하게 되면 , 그렇게 사건의 무한 왜곡을 통해 그렇게도 슬프고도 애절한 스토리로 윤색하는 습관 말이다.
어제는 동네 형과 오래간만에 가난한 예전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떨었다. 중곡동은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저 개발 저 성장 동네, 1970년 마지막 개발을 뒤로하고 아직도 몇몇 집들은 그때 당시 연한 파스텔 톤의 다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을 동네에 붙이고 있는 곳이다. 아마 서울에서는 창신동 하고 이곳만 남지 않았을까?
골목을 돌아다니며 겨우 5층 정도 올라온 모서리 건물을 보면서 "야 이 정도 건물만 갖고 있으면 우리의 노후도 그럭저럭 유지될까? " " 아니 , 이 정도 해봐야 겨우 밥이나 먹고 살걸? 애들 커봐라" 이따위 비 상식적인 이야기나 나누면서 골목을 돌았다. 이 동네에서 커서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중곡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 시절 가난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 말이다.
"우리 집이 미싱공장을 했잖아. 저 복개천 도로에서 , 그 공장도 쪽방 이어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 글쎄 그 공장에 딸려있는 쪽방에 허참 아저씨가 살았다니까? 유명해지기 전에 말이야."
" 저번에 택시를 탔는데 , 아저씨가 저 복개천 위 영화사 쪽에서 살았나 봐. 이 동네 이름이 중곡동 말고 질곡 동이라고 불렸데. 비만 오면 온 동네가 진창 천지라서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는 있어야 한다'라고 질척거리는 동네라서 이름이 질곡 동이래 "
"저 복개천 길 위로 쭈욱 가서 사가정으로 가면 녹색병원 있잖아. 그 녹색병원이 원래 무슨 자리였는 줄 알아? 거기가 그 유명한 원진레이온 자리야. 그 어마어마한 산재로 유명한 "
" 야. 그전에 그 자리가 더 유명해. 거기가 예전 가발 공장으로 유명한 YH무역 자리잖아. 김영삼이 총재로 있던 신민당 그 사건. 이 동네는 암튼 가난이 태생이고 지긋지긋하게 끊기질 않아 "
이야기를 나누다가 군자역 뒤편 골목에 다다랐다. 젊은 친구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오뎅 바, 치킨 집, 횟집.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광경은 참 반가운 풍경이었다. 나는 오늘 비록 장사 죽 쒀서 개털이지만 동네 근처에 이렇게 불타는 골목이 있으면 언젠가 나도 이렇게 뜨거운 날이 오겠지. 하는 마음이라도 들지 않겠는가.
"중곡동이랑 이쪽 능동 골목하고는 또 달라. 여긴 말이지..."
" 또 그 개 잡소리! 능동 애들은 출신이 좋고 중곡동은 출신 성분이 하삐리고"
"그렇지! 니들 천호동 것들은 상종도 못할 것들이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랬다. 같은 반에 능동 사는 애들이 있으면 '정원 있는 집 철문 큰집' 사는 애들이라고 가난한 우리가 놀리고, 놀림당한 아이는 '우리는 사실 부자가 아니다' 라며 강변했다. 광장동 몇 년 살던 놈은 술만 마시면 평생의 자랑이 "나는 광장동 출신이니까 니들과 달라" 라며 소주잔을 혼자 마시는 중이고, 우리는 낄낄대며 "그래봐야 너도 우리랑 같은 학교다"
친구 하나는 자기 노력으로 빈민의 기억을 지웠다. 지금은 월급쟁이로 올라갈 수 있는 상위 그룹에 속했다고 본인은 주장한다. 우리는 그 덕분에 술을 많이 얻어마셨다. 그의 성공은 우리에게는 그저 "술값을 몰빵 하는 이유 혹은 권리" 또 다른 우린 여전히 가난하지만 그 덕분에 술을 늘 얻어마신다. "가난한 나의 권리" 같은 것이다.
우리는 가난을 염탐하고 윤색하고 다시 재 배열하고 하루를 보낸다. 오늘 술자리에서 "야 어떤 유튜브에서 건담 RX-78이 왜 한대밖에 안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던데?" 내가 다시 물었다 " 그런 거 아는 놈들은 어떤 비급 같은 것을 하나 주워서 그걸로 콘텐츠 만드는 거 아냐?"
"가난 같은 거지. 우리 모두 겪었을 것에 대해 좀 더 깊게 기억해 내고 옆으로 옆으로 가지치기하면서 기억을 기록해 내는 거 , 아마 똑같은 건담 시리즈를 봤을 것이고, 로봇 대백과 사전을 봤을 텐데 , 자기 위로가 강한 스타일들이 저런 기록을 잘 찾아내. 잘 되면 오타쿠 모자라면 우리처럼 사는 거지 "
괜찮아. 우리처럼 이 정도만 윤색하고 사는 것도 말이지. 언제 우리가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가 울었던 이야기. 가난해서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한풀이. 이런 거 말했던가?
우리도 충분히 늙었고. 아이에게 기억을 남겨주는 존재인데. 할 수 있으면 윤색해야지.
여전하잖아 저 담벼락. 시장통에 있는 저 촌스런 담벼락에 누가 낙서도 많이 안 남기고 남겨줬잖아.
저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지. "여기 중곡동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