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듣지 않을 라디오
징크스,
우리가 사는 이곳의 아침은 날카롭고 복잡합니다.
그 아침을 여는 내가 다치지 않도록 나는 가급적 일정한 루틴을 만들어 가곤 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침에 눈을 떠서 세수하기 전 마시는 물의 온도는 꼭 미지근할 것.
일회용 렌즈는 왼쪽부터 착용할 것. 아파트에서 출발하는 주차장의 왼쪽 진입선을 가급적 밟지 않을 것.
이 사소한 것들이 깨졌을 때, 출근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방금 전 지키지 못한 그 루틴' 에게 화를 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의 징크스는 중요합니다. 연약한 나를 지키기 위해 여기저기 세워놓은 부적 혹은 토템 같은 것이지요.
오늘 하루도 수많은 토템 속에서 잘 지내고 있었나요. 무사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음악은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저는 어릴 때 고약한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까지 엄마와 다툼이 있는 날은 학교에 가서 운이 좋았고, 아침이 고요한 날은 이상하게 학교에서 여러 말썽이 있었어요.
철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당연히 아침에 집에서 평온한 것을 원했을 텐데, 성장의 상식이 없었던 저는 아침에 '무조건' 엄마와 다툼을 만들고 서운하게 하고 학교를 가곤 했습니다. 물론 이 징크스의 확률은 너무도 높고 정확해서 학교에서 운이 좋은 날이 많았지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말입니다. 어쩌면 그 징크스는 빨간불 파란불이 켜지는 것처럼 하나의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과정을 해내고 나면 해결되는 일종의 '해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엄마와 싸워서 이후에 운이 좋은 것은 아니고 , 아침이면 학교를 가기 전 전방에 기합 3초! 같은 것을 했어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징크스가 많은 사람은 연약한 사람일까. 하는 자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마음에 걸리고 , 뭐는 이것 때문에 안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러나 , 자기 방어적 자세로 곱씹어 생각해 보면 , 나는 그렇게 믿음을 나누고 나눠서 분산투자 하고 철저한 아웃소싱을 함으로써 나의 전두엽에 발생할 수 있는 해로움을 방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종교를 믿는 것처럼 성스럽고 가치 있는 투자가 아니어도 얼마나 좋습니까. 길 가다 꺾은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이파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그 과정 속에서도 혹시 내가 부담해야 할 확률의 부담을 땅으로 던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하루 가게에 손님이 많지 않아 허전했습니다. 이 시간이 되면 으레 들어올 줄 알았던 날이 아니고 파리 날리는 날이 되어 좀 걱정이 될 때, '그래 오늘 아침 그 길로 올 때 어쩐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늘 오던 길이 아닌 곳으로 돌아서 왔으니 오늘 하루의 기운이 엉크러 진 것이지. 이렇게 아주 빠르게 진단 내리고 치료법을 동원합니다. 내일은 원래 다니던 길로 다니겠습니다.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각종 징크스의 유래' 같은 것이었는데 , 퇴고 없이 수정 없이 그냥 지나치는 말이 되다 보니 결론은 '연약한 정신상태로 살아도 괜찮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번 글과 내용은 이런 식으로 퇴고 없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원고는 방송이 되거나 콘텐츠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혹여 누군가 리플을 남겨 사연을 주신다면 그 사연에 살을 더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시간은 늘 이 시간 자정 전. 방송처럼 소리나 영상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글로 남기겠습니다.
라디오처럼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은데 좀 느리게 단방향, 그것도 아주 원시적인 "캐묻고 시간이 지나 답하다"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퇴고나 사전 계획은 없는 글이니까 답글 다시는 분들도 깊은 고민 없이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해서 참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