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군대를 팔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와이프에게 지도 1점을 받았습니다. 유도에서 보면 공격적이지 못하거나 공격을 가라 로 했을 때 지도(시도)를 받는데 , 오늘 아침이 그랬습니다.
정리 정돈이 안 되는 것에 대한 지도. 매번 받는 지적이지만 새롭습니다. 까먹으니까요
와이프가 또 오늘도 돌려 돌려 차분하게 말을 합니다.
"오빠는 참 신기해요. 한국 남자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면 기본적인 정리정돈이 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또 같은 레퍼토리로 받았습니다.
"우리 부대가 그게 없었어. 정리정돈, 아주 특수부대였거든"
대한민국 군필 남자들이 들으면 "엥? 저 무슨 신박한 헛소리지?" 할 말이지요.
네 , 그렇습니다. 당나라 부대도 한다는 정리정돈이 잘 없던 아주 진기한 부대 맞습니다.
군대 이야기를 머 길게 해 봐야 아무 쓸데없는 말이고, 그냥 격오지 감시부대라서 그리고 인원이 열명 내외의 (적을 때는 네 명도 있을 때가 있습니다.) 부대라서 근무 이외의 생활에 대해서 별 터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모든 병사가 각 부대 착출 파견병이니 아무래도 군기와 소속감이 좀 느슨한 부대였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와이프가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사실 관계인 30년 전 군대를 핑계로 저의 게으름과 잘못 길러진 습관을 변명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와이프도 저 말을 믿겠습니까. 차라리 시댁 식구들에게 죄상을 고하고 그 배상처분을 받는 게 순리적이지요.
잘 속아주긴 합니다. 물론 저도 아주 최악까지 상황을 밀어내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군대 이야기가 안 통하겠지요. 요즘은 새로운 방법을 써서 와이프에게 이 혼돈의 스토리를 확장시켜 줍니다.
22개월 된 아들이 마구 집안을 어지르고 다니면 "와... 저 봐라. 그래도 내가 아들보다는 좀 낫지. "
효과는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아들보다는 덜 어지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제가 아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그만 좀 던져.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와이프는 저에 대한 적개심과 동정심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백신효과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몇 년간 같이 살다 보니 와이프도 점점 사람다워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리정돈 벽이 있었는데 , 요즘 가끔은 저녁에 밥 먹은 (그것도 아들이 자고 있으니 도둑같이 먹습니다.) 그릇과 햄버거 종이를 바로 안 치우고 아침에 치울 때도 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지금은 사람다워졌습니다. 아들 덕분이지요.
저의 변명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은 좀 슬픈 일입니다만. 제 군대 스토리로 출발한 집안의 얽힘과 섞임의 잔혹사가 점점 더 단단한 스토리를 갖고 나름의 장르 문학이 되어 가는 좋은 모습입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제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들었던 '내가 기억 못 하는 유아기의 집안 스토리' 역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두 분이서 끊임없이 각색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 완성에 매진하신 거지요. 그 결과 아버지는 '어떤 하루 일찍 택시 영업이 끝난 날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들을 앉혀놓고 방 안에서 버너에 불을 붙여 검은 프라이팬에 은행을 몇 개 구워 아들에게도 두어 알 입에 넣어주고 아버지의 술안주로 딱 20알을 구워 드시는 그런 자상한 모습'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나이를 먹고 마치 고 서적에서 자료를 찾은 것처럼 가끔 친척 어른들에게 들었던 아버지의 청춘 시절은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가난, 용두동의 청춘스타' 그런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철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군대 이야기를 앞세우긴 했지만 조금씩은 교정이 되고 있으니 늦게나마 사회화에 참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아주 적지만 저도 키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도 나중에 아들에게 자상한 모습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노력해야겠어요.
물려줄 것은 없는데 , 아버지에게 받은 기억은 자상한 그것 이니까 , 꽤나 가치 있는 유산 같아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