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네밥상은 여전히 바쁘고 서럽다
17세에 서울로 올라온 충청도 시골 아낙네는 사촌오빠의 집에서 보모로 일하다가 영등포에 있는 가발공장에 취직을 한다. 아낙네는 하루 종일 가발을 심는 일을 하며 공장 의자에서 하루를 보냈다. 시간은 흘러 공장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얻고 쉬이 좋아지지 않는 단칸방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키운다. 딸은 남의 집에 맡기고 아들만 데리고 살아갈 때도 있었다.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하루에 벌어올 수 있는 돈은 단무지 한 줄 또는 동태 한 마리가 전부였다. 예전 안기부 앞 도로변 길가에 문을 열면 방이 나오던 곳. 석관동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살게 된 건 몇 년 후였다.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터울 많이 나는 동생집에 얹혀살았다. 그렇게 시간은 곤궁한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을 즈음 , 여기저기 푼돈을 빌려 치킨집을 차렸다. 닭을 튀겨본 적이 없으니 처음 몇 달은 어려웠지만 그 한적한 골목에서 가장 먼저 가게를 열고 가장 늦게 가게를 닫아가면서 조금씩 찾는 이가 많아졌다. 아침에 나와서 본사 물건을 받아 다듬고 치킨무를 다라이통에 담고 닭을 튀겼다. 하루 종일 가게에서 서있어야 했다. 튀김기는 쉬이 다룰 물건이 아니다.
초벌로 튀겨놓은 닭을 다시 튀기면 채 날아가지 않고 숨어있던 수분 때문에 기름이 튀어 오른다. 뜨겁다고 닭을 안 튀길 수는 없다. 닭을 튀겨야 연필도 사주고 공책도 사주고 방세도 낼 수 있었다. 서서 졸다가 국자를 떨군 일도 있다. 밥은 서서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급하게 먹기 위해 잘 씹지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곤궁한 삶이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 아낙네의 팔에는 검버섯처럼 수많은 기름자 욱이 생겼다.
이제는 기름통 앞에 서있던 그 모진 세월을 버틴 팔로 당신의 딸이 낳은 아이들을 안고 있다. 여전히 아낙의 팔은 무엇인가를 안고 있다. 그 뜨거운 흔적 ,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흔적 덕분에 아이들이 자랐고 딸의 아이가 생겼다. 여전히 밥을 급하게 먹는다. 이제는 음식을 즐겨도 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