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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Dec 16. 2020

홍어

음식은 당신을 위한 노력이다

#홍어

홍어를 처음 먹어본 건 아버지 술상 근처였을 테다. 그것도 아주 삭힌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색깔만 입힌 저렴한 홍어였다. 아버지는 비싼 안주를 사서 들고 들어올 형편은 아니었다.

주말 식객으로 예식장을 찾으면 홍어무침이라고 만져놓은 무침이 있다. 식습관이 잘못되었는지 늘 식장에 가면 딱 세 가지 음식만 담아온다. 홍어무침. 잡채. 맨밥... 대충 떨어 넣고 나오면 두 시간 정도 후에 헛헛해져서 또 식당을 찾는다.

여자 사람과 교제를 하고 집에 인사를 간 게 처음인 때가 있었다.
신교대 방문 때처럼 얼어있는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여자 쪽 집안사람이 전화를 한 듯하다. 통화 속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하고... " 종훈 씨 홍어 먹을 줄 알아요?"
"네 그럼요 제가 못 먹는 게 어디 있어요"

식탁은 풍성했고 내 눈은 계속 건조해져 갔다.  맑게 끓인 아귀탕은 징그럽게 맛있어서  적당히 먹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대가리 속의 맹세를 디가우징 해버렸으니... 이미 게걸스럽게 두 공기를 비웠다.  늦게 도착한 홍어는 도시락같이 포장되어 있었다.
무려 기십만원이 넘는 흑산도 홍어라고 한다. 제대로 삭힌 거

한점 입에 넣었다. 미리 상상을 했다. 들숨을 최대한 빼자. 꽤나 아픈 맛이 났다. 숨을 마셔야 하는데 밥상에서 품위가 없어지면 가뜩이나 없는 놈이 더 없어 보일까 봐 숨을 참았다.

홍어를 받고 술도 한잔 받았다. 그런데 홍어를 주신 분이 의외로 날카로웠다. " 왜 입안에 있는 홍어를 안 삼켜요?"

그런 날이니까 그렇게 먹고 기억에 남겼다. 이후에도 장난으로라도 둘 사이에서는 홍어는 찾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먹어주는 척을 한 메뉴였다. 솔직히.

헤어지고 여러 가지 말이 있었지만 알아서 잘살아라.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삼 년 정도가 지났나.... 어느 날 해가 뜨거운 오후에 먼지 냄새 가득한
 종로길을  걷다가 홍어집 앞에서 먼지 냄새하고 매우 비슷한 홍어 냄새를 맡았다. 그때 나를 괴롭혔던 그 냄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아무 의미 없이 전화를 걸었다.
"홍어 먹자. 종로 3가쯤이야 "
막걸리 두병쯤 비워 갈 무렵 홍어를 먹인 집안의 그 사람이 자리에 도착했다.

홍어에 막걸리만 세 시간 정도 만나면서 둘이 나눈 기억의 핵심. 오차는 딱 하나였다 " 홍어 값이 18만 원이었다... 아니었다... 라는것"

종로는 그 친구와 헤어질 때 가장 페어 한 곳이다. 딱 가운데니까.

"잘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라는 축성에 돌아오는 답변은 "너는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라는 따뜻한 응답.

한동안 못 보던 시간 동안 홍어 공부 많이 했다. 덕분에.

흑산도 홍어도 직접 먹으러 갔으니까.

사실 여전히 홍어는 잘 못 먹어. 먹는 척하는 거지.

그거 꽤나 노력이야.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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