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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08. 2021

제육볶음

석관동 , 기쁜 우리 어린날

오늘의 저녁. 삼천 원에 한 근으로 팔아주는 전지 제육볶음.
750원에 양파 한알 사서 같이 어우르니  이리도 행복하다.

국물이 있는 제육볶음은 '가난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사라지고 여동생은 외갓집에 잠시 맡겨져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한예종 자리가 되어버린 석관동 안쪽. 그 시절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지만 넓은 도로에서 테니스 공으로 주먹 야구를 하던 시절. 그곳은 안기부 자리였다.

앞에 있는 건물들은 싸구려 파스텔 칼라의 페인트가 칠해진 단칸방. 도로 옆 현관문을 열면 바로 부엌 한 칸. 그리고 연탄을 넣는 자리 옆으로 올라가면 단칸방. 석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이다. 엄마는 파출부를 나가거나 동네 미싱 시다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오면 그날 저녁 반찬은 예산이 결정되어 있었다. 지금의 물가로 보면 아이러니지만 당시에는 단무지 한 줄 과 동태 한 마리의 가격이 같았다. 오백 원을 주면 내가 저녁 메뉴를 골라와야 했다. 어린아이에게 동태는  비리면서 괴이한 반찬이었다. 단무지는 달고 짜고 가혹하지 않은 형태가 매력이 있었다.  나는 늘 단무지를 사들고 들어갔다. 오백 원이면 엄마와 나의 저녁은 늘 완성되었다.

생일날은 음력이라 늘 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라버린 시절에도 아들에게 생일날 하루를 챙겨주고 싶은 어미의 마음은 총량이 일정했을 것. 노란색 전기밥솥 한가득 돼지고기로 만든 제육볶음을 푸짐하게 올려주었다. 국물이 있는 전지로 만든 얇은 고깃국.

회사원들은 공감할 수 있는 회사 근처 한식뷔페.  입이 짧은 내가 가끔 접시 가득히 이런 식의 제육볶음을 덜어오면 동료들이 늘 물었다. '그게 무슨 맛이 있다고 그렇게 많이 퍼오셔서 남기지도 않고 다 드세요?'

하루. 밥솥 가득히 끓여주던 석관동 시절이 행복했었다고 생각하니까. 국물이 자작한 싸구려 돼지고기 국을 만날 때마다 나는 늘 행복하다.  엄마는 며칠을 고민했을 음식이다.

아직도 한 근에 삼천 원이다. 행복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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