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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08. 2021

계란 반숙

초년생 , 함바집에서 위로받다.


갑자기 생각난 20대 즈음의 이야기.


2000년 초반 다니던 회사가 있었다.
사업부는 크레인 게임기. 별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전국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부서 특성상 상시 대기를 하면서 아침마다 전국 지사장들의 보고를 받아 추리는 매우 방대해 보이지만 기계적이면서 수익률이 낮은 사업. 즉 망하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이후 전국에 있던 코사마트라는 슈퍼마켓 연합 브랜드와 제휴하여 국내 최초로 에이페이(카드 무선 결제기)를 만들어 시스템을 돌렸다. 저축은행과 제휴한 사업이었고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다. 물론 당시 사업을 했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꿈꾸는 청사진의 장수만 모아놔도 팔만대장경이 될 것이다. 본사 총괄을 맡고 있던 나는 수면부족과 섭식장애가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결제기가 나가면 그것의 콜 에스는 별도의 팀이 있어야 하는데 , 사업 초기라 그냥 본사에서 24시간 콜을 받는 무식한 방법을 쓴 것이다.
나는 새벽에도 전화를 받았고 카드결제가 잘못 일어나거나 카드깡 같은 정황이 의심되면 새벽에도 로그 분석을 해야 했다.(당시에는 엑셀로 로그를 잡아놓고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은행에서도.... 쿨럭). 퇴근 후 술을 마시다가 자정이 가까워져서 결제가 많아지면 전화기는 불이 났다. "결제가 안돼요. 용지가 떨어졌어요. 이거 어떻게 해요" 등등.

그런 고생 후에 사업이 잘되었으면 지금 추억으로 남기지 않고 잘 살고 있었겠지.... 결제기 사업 초기라서 비용 대비 수익률 계산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고. 추가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단말기 제작까지 어려워졌다. 회사는 망해가고 있었고, 직원들은 공기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내부적인 문제들 때문에 여직원들은 사장과의 회식자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머.. 안 봐도 비디오지. 머..... ) 여동생 나이뻘 되는 아이들이었다. 사회생활 초년생. 어려워져 가는 회사와 잘못된 사내 분위기. 그렇지만 직원들은 단합이 잘되었다. 우리는 저녁마다 없는 살림에도 꼭 소주 한잔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직급상 과장이 한잔을 사고 , 그다음 직급인 내가 한잔을 사고.... 그게 언제까지 가겠는가. 강남의 물가는 당시에도 잔혹했으며 소주 한번 마시면 짝으로 마시던 호기를 부리던 술자리 멤버들은 늘 주머니가 궁했다. 눈치를 봐야 했다. 우리는 저녁시간 저렴하게 갈 수 있는 술집을 찾았다. 근처 초등학교 사거리 , 지금의 뱅뱅사거리 가기 전 사거리다. 새로 신축하는 큰 건물을 위한 함바집이 저녁까지 영업을 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어 번... 그 이후 우리는 일주일에 출근하는 날 저녁 모두 그곳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닭도리탕을 즐겨 먹었다. 자작한 국물에 밥까지 넣고 참기름과 김가루를 넣어서 밥을 볶아먹으면 현실은 가혹했지만 그날 저녁 뱃속은 든든했다.
함바집 사장님과 따님은 금세 우리와 친해졌다. 우리는 소주를 짝으로 시키고 나중에 남는 병만 반납했다. 계산도 우리가 했다. 물론 반납은 용서치 않았다. 핵심 멤버 4명은 늘 한 짝. 짝의 멤버였다.

월급은 계속 체불되어갔다.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책상 위 저금통 따야 하나?" 같은 일도 실제로 진행되었다.  저녁에 누가 먼저 술 한잔 하자고 하는 것은 서로 간 부담이었다. 술도 같이 못 먹던 하루. 가족이 없어서 대충 하루 때우고 살면 되는 사람이 술을 먼저 제안을 했다. "소주 한잔 합시다. 내가 쏠게. 즉석복권됐다!!!"  농담 같은 이야기에도 쉬이 사람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달래고 웃기고 해서 함바집에 질질 끌고 갔다.
함바집 사장님이 물어온다." 아니 왜 뜸해요? 회사가 망했어?"
사실을 말하니 웃으면서 대답할 여유가 없었나 보다. 다들 담배 피우러 잠시 나갔을 때 , 막내 웹디가 이야기했단다. 회사 어렵다고.
닭도리탕은  나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덴뿌라와 멸치에 소주를 시작했다. 사장님이 쟁반을 들고 오신다. 사람마다 한 접시씩 계란 반숙을 세알 또는 네 알 지져서 앞에 놔준다. " 젊은 사람들은 계란 많이 먹어야 돼. 이거 먹고 내일도 오고 모레도 와. 내가 올 때마다 계란은 마구 줄 거야. 잘 먹어야 잘 버텨. " 저 뒤에 주방에서 연신 무언가를 부치는 함바집 딸은 잠시 후에 분홍 소시지를 계란에 지진 것과 계란찜..... 그리고 오징어 무우국을 한 쟁반 들고 온다.  우리는 여전히 젊었다. 울컥하지 않았고 감사히 계란을 받았다. 계란을 듬뿍 먹었다. 함바집구석에서 20대들은 기운을 얻어서 그날 저녁도 깔깔되고 있었다. 계란 반숙이 시절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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