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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08. 2021

비지 , 바다

강릉 초당마을 앞

쿰쿰한 집이었다. 신당동 산동네. 똥지게 아재도 못 올라와서 똥통을 지고 내려간다는 그곳.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술안주는 대략 참새구이 또는 곰삭은 김치 두어 점, 그리고 콩비지찌개였다.

골목 아래 문화교회 옆. 두부집을 가면 콩비지는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육점. 돼지를 팔다 남은 잡뼈와 고기 부스러기 몇 조각. 돼지비계 담뿍 넣고 쿰쿰한 김치를 넣고 들통에 끓인 콩비지찌개를 어린아이가 좋아할 리 만무하다. 비지에서 나오는 노란 국물과 돼지기름이 만나 옥수수 색을 낼 즈음 김치가 모든 것을 방해한다. 밥 위에 올려 비벼먹는다. '짜구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밥을 양껏 퍼먹다가 배만 볼록 나온다는 뜻이다. 짜구나게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동네였다.

산동네인데 집이 반지하였다.  육이오 때도 털어먹을 게 없어서 인민군이 밥을 나누어줬다는 설이 있는 동네.

갑자기 쿰쿰한 김치 대충 찢어 넣고 잡고기 넣어 끓인 콩비지찌개가 생각난다. 담백하지 않은 맛. 음식이 야했다. 섹시한 게 아니라 들판의 음식 같았다.

콩 맛이 살아있는 비지를 배운건. 내가 글자를 배운 후 한참 후다. 끼니 걱정보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던 때쯤.
비지가 더러워서 피하던 기억을 극복하게 된 건 사실 얼마 안 된다.  가난을 추억 포장하기 시작했다..
오징어도 저렇게 막 말리다가 연탄 위에 대충 올려 슬쩍 구워서 동해 쪽 김치와 먹으면 맛있다. 연탄 위에 그냥 올려야 맛있다. 잡탄의 맛이 얼마나 좋은데.

내 친구 놈들은 어릴 때 강릉 가서 민박집 구할 돈만 있고 라면만 겨우 사서..... 그릇도 못 빌려서 개밥그릇 훔쳐서 라면 끓여먹었다고 한다.

맛있었겠다.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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