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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09. 2021

지평막걸리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집 앞에 이마트 24 편의점이 생겼다.

그 자리에는 원래 슈퍼가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꽤나 불친절했다. 가끔은 낮술에 취해 있기도 하고 찾는 물건 위치도 잘 기억 못 하기도 했다.
이 동네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다. 저녁에 입이 심심해서 막걸리 한두 병을 사서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나름 까탈스럽게도 흔들지 않은 장수막걸리만 찾으려고 이 가게에 자주 왔었다. 지하상가 마트가 더 크고 할인이 되었지만 가라앉은 막걸리는 이곳에 더 많았다. 원래 막걸리는 덜 팔리는 가게에서 숙성이 잘되는 법이다. 한날 날씨가 꽤 더워지던 저녁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막걸리를 꺼내고 있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 막걸리 잘 드시면 그 옆에 지평 막걸리 한번 가져가 봐요”  지평은 나도 가끔 먹긴 했다. 다만 쌀맛이 너무 진해서 배가 금방 불러오는 느낌이 있던 막걸리다. “ 아 예 지평 맛있더라고요. 쌀 맛도 좋지요”  정중한 거절이었다. 다시 장수막걸리를 꺼내려했다. 재차 말씀을 건네신다. “ 에이 파란색 그거 말고 그 옆에 큰 거... 오렌지색 가져가 봐요”
어? 그러고 보니 원래 사가던 지평 막걸리와 색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댓 병 막걸리가 있다. 지평막걸리다. “ 이건 뭐예요?”
“ 그건 지평막걸리인데 밀가루로 만든 거예요. 막걸리 마시려면 그걸 드셔 봐야지”
추천을 받아 댓 병을 들고 집에 왔다. 대접에 따라보니 가볍고 진득했다. 술꾼의 맛은 술꾼이 알아준다.라는 말이 맞다. 그동안의 불친절을 감하는 추천이다.

두 달 전쯤인가. 저녁에 라면 사러 슈퍼에 들렸다.
라면 집어서 계산대에 올려놓고 카드를 드리는데 갑자기 말을 건넨다. “ 이제 며칠 후에 가게 문 닫아요. 이제 힘들어서 못하겠어”
“아니 갑자기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 힘도 들고.... 재미도 없고...”

며칠 후 가게는 철거하고 있었다.  가게는 빠르게 내부수리를 하고 이마트 편의점이 들어왔다.
물건은 다양했고 매장은 깔끔했다.  아침에 커피 한잔에 도시락을 찾아 저 멀리 을지병원까지 안 가도 된다. 편하다.

막걸리 권해주던 동네 슈퍼 아저씨가 사라졌다.
깔끔하게 말이다. 깔끔 해지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불친절하던 그 아저씨는 이제 좀 편해지셨을까.

나는 참 촌스럽고 게으르다. 그래서 그런가 ,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사라지면 낯설고 불편하다. 그리고 아쉽다.
무언가가 정들만하면 사라지는 거. 가진 게 별로 없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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