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 짓는 사람 Jan 09. 2021

순오씨 이야기

간장게장 만지는 손

순오씨 이야기.

1960년 중후반 ,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나라다. 구로공단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여공들이 모여들었다. 앉아있기 어려운 좁은 공장에서 제대로 밥 한 끼 먹지도 못하면서 하루 종일 퀴퀴한 전구 아래에서 남의 머리털을 쪽파 한뿌리만큼 쥐고 한 올 한 올 심어 간다. 가발공장이다.
여공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가발은 바다를 건너 '메이드 인 코리아'의 이름으로 팔려나간다. 그렇게 젊은 청춘들이 전구 아래에서 눈이 침침해져 갔다.

충청남도 보령, 주산면. 바닷가가 멀지 않은 서해의 작은 마을. 그 마을에서 그나마 배운 사람이 있었다. 왜정시대라고 불리던 일제강점기 시절, 이 땅에는 배움을 원해도 조선인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배워서 돌아오기 위해 백 씨 집안 청년은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 돌아온 고향. 지식인으로 살면서 자식들을 돌봤다. 그리고 동네에 억울한 이야기들을 대신 전해주는 역을 한다.  자식들은 그럭저럭 잘 자랐다.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엄했다. 자주 집을 비우고 멀리 떠나 일을 하고 오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장 역할을 했다. 여동생들은 오빠를 따르면서도 무서워했다.

둘째 딸은 많이 배워주지 못했다. '여자가 어찌 많이 배운다는 말인가' 하는 말 때문에 고등학교도 가보지 못한 둘째는 둘러봐도 논과 밭. 언덕 넘어 있다는 바다 이외에는 딱히 볼 것도 배울 것도 없었다.
결국 둘째는 집을 나와 서울로 몰래 떠난다. 배워주지도 않는 집을 떠나 내손으로 돈을 벌어 공부도 더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첫 번째 가출은 이내 실패했다. 큰오빠가 서울까지 달려와 수소문 끝에 둘째를 잡아갔다.
두 번째 가출은 좀 더 치밀했다. 서울에 친척에게 바로 연락하지 않고 공단에서 친해진 또래 여공에게 연락을 해 만났다. 이번에 취업한 곳은 가발공장이다.  몇 촉의 전구 밑에서 눈이 침침해지면서 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순오 씨는 요즘 다시 꽃게를 만진다. 꽃게는 서해에서 잡히면 바로 세척 후 급속 냉동되어 온다. 바다에서 바로 시간을 멈추어 오는 것이다.
꽃게를 다시 세척하고 간장게장을 만들기 전, 순오 씨는 바다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그물들을 빼야 한다. 그러나 마치 머릿결 같은 많이 있지는 않지만 너무 얇아 잘 보이지 않는다. 가발 공장에서 일할 때는 머리 한올도 다 집어 심었는데 말이다. 시절이 지났고 시대가 흘러갔다. 그때와 같은 건 투박하고 두꺼운 손마디뿐이다. 젊은 시절을 버리고 굴곡 많은 삶만 남았다.  

게장에 대해 암코롬 모르는 늙은 아들을 부른다. "꽃게 좀 잘 살펴다오."
아들이 가게에서 유일하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아들 뒤에서 꽃게를 바라보고 있으니 생각이 난다. '그 언덕 넘어 있던 바닷가, 작은 항구도 사라졌을 텐데...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건 꽃게의 붉은 배딱지뿐이네'

꽃게의 배에 붉으스르한 기운이 보인다. 오늘은 아들에게 '게 배딱지 고르는 법'을 알려주어야겠다. 그 바닷가 찬물 속만큼 차갑고 어두운 간장에 꽃게를 넣기 전에 말이다.

어린 여공은 노란 다마를 열심히 바라보며 살아왔다. 전등은 좋아졌는데
어린 여공은 이제 잘디 잘은 머리칼을 못 본다. 시절에 나누어 심어주고 여기까지 왔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지평막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