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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09. 2021

바느질 할머니의 콩나물밥

손재주 좋은 여자를 만나지 말라하시네요

바느질 할머니가 비벼주시던 콩나물밥

제대하고 압구정동에 있는 한복집에서 일을 했다 주로 원단을 종로 광장시장에서 들고 나르거나 한복이 완성되면 손님들에게 배달을 해주는 외근사원이었다. 그 당시나 지금에 생각해도 꽤나 고가의 한복집이었기 때문에 연예인들도 꽤 많이 오고 방송에도 협찬이 자주 들어가던 곳이었다. (지금 유명한 박술녀는 그때는 게임이 안되었다...라고 늘 생각했었다.)

한복집에서는 저고리는 저고리 전문가... 치마는 치마 전문가... 서울 구석구석... 바느질 솜씨가 좋은 선수들에게 각각 주문을 넣어서 본사(?)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외근사원이 주문에 따라서 노량진.. 불광동... 화양리.... 서울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주문 일정에 따른 물건을 받아오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집이 노량진에 있던 할머니 댁이었다. 노량진에 골목골목을 들어가면 영화 "황해"에 나올듯한 을씨년스러운 계단을 올라 복도를 관통하는 아주 오래된 빌라에 살고 계셨다.

그 집에 가면 늘 할머님이 "밥은 먹었어? "라고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해서 "아.. 예 먹었어요.."라고 했다. 가끔은 제품이 너무 급하거나 에리(?)를 급하게 갈아야 하면 작업하시는 방안에 멀뚱하니 앉아서 할머님의 바느질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가끔은 땡땡이를 동조... 해주셨다..(사무실에 전화를 하셔서.. 아직 일이 멀었으니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시면 그 집에서 낮잠 자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 집은 방이 세 개가 있었는데 옆방에는 내 나이보다 적어도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형(?)이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늘 집에만 있고 딱히 일을 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머 남의 집 일인데 물어보기도 뭐해서 궁금한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놨는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실장님이 그 집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였다. 그 아들은 무진장 똑똑한 법대생(법대로 기억한다...)이었는데 데모하다가 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나온 다음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사람도 피하고 말도 잘 못한다는 거였다. 아... 그래서 어머니가 여태껏 아들까지 건사하시면서 같이 살고 있는 거였구나...

그 이후 그 집에 가면 조금은 더 뻔뻔하게 굴면서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밥도 안 먹고 가서 밥 달라고 생떼도 피고. 그때 할머니가 가장 많이 해주신 게 콩나물 밥이었다. 오래된 전기밥솥에다가 미리 쌀도 불려놓으시고 간장도 해놓으시고 쿰쿰한 김치도 내어주시고 맨 위에는 여전히 비싸게 느껴지는 잘 지져진 계란 프라이도 한잔 올려주신다. 한번 청해서 먹고 두 번 청해서 먹고 상도 안 치우고 옆에 앉아서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외근사원의 가장 악독한 짓인 "현장 퇴근"까지 저지른다. 그렇게 집에 가려하면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서 손에 쥐어주신다. 용돈 하라고. 나는 뻔뻔하게도 잘 받아서 잘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 집에는 자주 전화도 했다.

내가 뻔뻔한 손자 역을 하는 동안 그 똑똑한 동네 자랑이었던 법대생 형은 옆방에서.... 그저 어항에 거북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와도 거북이만 보고... 엄마가 불러도 거북이만 본다..... 내가 그래서 그 형 몫까지 뻔뻔하게 콩나물밥 두 번 청해서 먹고 그 형 대신에 용돈 받아서 생맥주도 마시고 그랬다. 나는 그때 그게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콩나물밥 해주시던 그 전기밥솥은 아마도 지금은 못쓰실 텐데.
좋은 밥솥을 쓰고 계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동정 갈면서 몇 번이나 했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 나중에 색시 만나도 손재주 있는 여자는 만나지 마! 남자가 일을 안 하고 자꾸 색시를 괴롭혀... 남자는 맨날 술이나 먹고 다니고 색시가 바느질해서 멕여살리고... 그럼 나쁜 놈이여!"

당신께서는 그렇게나 손재주가 좋으신 게 평생의 한이신가 보다.

"네... 그래서 손재주 있는 사람은 피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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